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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학습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흡수한다. 학습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가정, 학교, 미디어 등이 존재한다. 그곳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미안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미안하다는 표현을 배우기보다 이를 강요받으면서 성장한다. 왜 미안하다는 언어를 선택해야 하는지, 상대방의 미안하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학습 경험이 전무하다.

김호연의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에는 망원동 옥탑방에 우연히 모인 네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나 사회로부터 연체된 인생을 사는 존재다.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하나같이 일자리를 원하는 잠재적 실업자다. 그들은 비록 옥탑방에 얹혀 지내는 처지지만 실업자를 양산하는 사회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걸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업을 가진 주인공만이 헬조선과 대립각을 세운다. 주인공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다음과 같이 꼬집는다. 지금은 돈을 벌기 위해 악순환의 궤도에라도 올라가야 한다고. 재능은 두 번째 문제라고.

소설 후반부에 등장인물들이 재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그들은 옥탑방을 떠나 생활전선에 투입된다. 경제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거만을 떨지도 않는다. 오히려 처음 옥탑방에 모일 때의 모습 그대로 서로를 응시한다. 주인공은 사유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지만, 우린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 이 때문에 ‘망원동 브라더스’는 누구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강요하지 않는 평범한 존재라고.

부패한 정치인이 내뱉는 미안하다는 말에선 세 치 혀로 사태를 모면하려는 꼼수가 엿보인다. 실패한 기업인이 던지는 미안하다는 말은 소비자를 향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스캔들에 휩싸인 연예인의 미안하다는 말은 팬과 멀어지기 싫은 아쉬움의 언어다. 상습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남발하는 자는 자기부정에 함몰된 정신상태를 보여준다.

이들과는 조금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별종이 있다. 평생토록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사과란 늘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들어야만 하는 일종의 자기위안 정도로 치부하는 인물이 이에 해당한다. 자신이 아무리 이기적인 행태를 반복해도 미안하다는 표현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아집이 엿보인다. 이러한 유형은 주변인에게 피로감과 불쾌감을 무한재생산한다.

권력자 주변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한 상황을 야기하는 이중인격자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권력을 창과 방패로 활용하여 자신에게 떨어질 물질적 이득에 집착한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이를 요리조리 피해가는 방법만을 학습한다. 어쩌다 대중 앞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털어놓는 순간, 판이 커진다. 따라서 권력자 주변의 범죄자들은 대부분 미안하다는 표현에 인색하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권력과 자신의 영혼을 바꿔치기해버린 현대판 파우스트이다.

작가 토마스 만은 정치를 혐오하는 국민은 혐오스러운 정치를 가질 자격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와 권력. 이 불멸의 자웅동체는 쉬지 않고 유무형의 사건·사고를 반복한다. 때로는 뻔뻔한 모습으로, 때로는 협상의 자세로, 때로는 미안하다는 변명으로 국민을 기만하려 든다. 어리석은 국민은 정치권력의 희생양이 될 것이고, 영민한 국민은 정치권력을 비판할 것이며, 용기 있는 국민은 이를 단죄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이다.

여름이다. 혼란스러웠던 겨울과 변화무쌍했던 봄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이번 여름에는 어떤 형태의 권력과 마주할지 궁금해진다. 권력을 꿈꾸는 자. 권력의 그늘에서 숨 쉬는 자. 권력의 향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시에 미안하다는 말을 꺼낼 줄 아는 태도이다. 근거와 이유가 명확한 사과를 통해서 권력보다 소중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계절이기를 바란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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