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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조선’ 2009년 12월호에 “한국정부 지원금 받아 연방제 통일 옹호, 조총련계에 장학금 줘”란 제목의 10쪽짜리 기사가 실렸다. 리쓰메이칸대학(이하 본 대학) 코리아연구센터(이하 코리아센터)가 ‘북한의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는 반한 단체’이며, 소장인 내가 ‘현재도 북한 간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제교류재단(교류재단) 등으로부터 다액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연방제 통일 지지’라는 주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연합통일방안과 더불어 연방제통일안이 들어 있는 6·15 공동선언에 서명했으며, 2007년 그를 초청하여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기에 코리아센터도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는 용공 반한단체라는 조잡한 논리로 짜였다. 게다가 본 대학을 ‘좌익대학’으로 단정하고 ‘총련계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고액의 가짜 영수증을 발행하고 있다’ 등 전혀 사실이 아닌 말을 지어냈다. 코리아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기만 해도 아는 초보적인 오류 등 기사에는 48군데나 오류가 있다. 사실 확인도 안 하고, 상반되는 주장을 고루 취재하지 않는 등 언론의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짜뉴스를 넘어 조작·모략 수준의 기사였지만 순식간에 인터넷과 각 매체에 퍼날라지면서 코리아센터의 활동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이에 나는 주식회사 ‘월간 조선사’와 담당기자를 상대로 2010년 1월11일, 기사의 정정, 사죄 광고 게재 및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며, 같은 해 12월15일에 정정 및 반론문 게재와 원고에 대한 1000만원 지불이라는 중재판결을 받아냈다. 기본적으로는 원고 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기는 하나 피해를 만회할 길이 없었다.

‘코리아센터’에 대한 공격은 이명박 정권 출범과 동시에 시작되었으며,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이어졌다. 국제적 체면이나 신의마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정권의 욕망대로 해외에 있는 연구기관까지 사찰·공격한 것이며, ‘전 정권 지우기’ 차원으로 감행된 김대중 전 대통령 명예박사 학위 수여에 대한 보복이었다. 해당 ‘월간 조선’ 12월호 표지의 반은 ‘동아그룹은 김대중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강탈당했다’라는 표제가 차지하고, 바로 밑에 코리아센터를 매도하는 기사 표제를 뽑았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집요한 음해의 일환으로 코리아센터와 나를 도마에 올린 것이다.

코리아센터는 2005년 6월에 한국학 연구소로 일본에서 규슈대학에 이어 두번째로 설립되었다. 센터는 일본 문부과학성과 본 대학 규정에 따라 창설되면서 설립취지에 ‘종합적 현대코리아 학술연구센터, 한국관계 교육·교류센터, 한반도 이해를 위해 지역에 열린 센터’를 들었으며, 설립 이래 일본 문부성, 일·한문화교류기금, 한국 교류재단, 동북아역사재단 등에서 연구지원을 받아 활동해 왔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문화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고, 근년에는 상호방문 관광객 연간 1000만명 시대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러나 학술연구교류 수준은 저조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대학교에 일어일문학과, 일본학과가 있으며, 주요 대학에 일본학연구소가 있는데, 일본에는 근년에 교양과목으로 한국어 강의가 보급되었을 뿐, 한국학 전공학과는 거의 없으며, 한국학연구소는 대여섯 개에 지나지 않는다.

늘그막에 임용된 나는 한·일교류와 상호이해를 높이고, 한·일 간 학술연구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 이바지하고자 2005년에 코리아센터를 설립했다. 코리아센터는 각종 학술연구, 5차례의 한국 영화제, 식민지인식에 관한 연속시민강좌, 한·일교류 등 다양한 활동으로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활력 있는 한국학 연구기관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일본 최초의 한국학 전공과정 설치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던 중 교류재단에 교수직 설치 지원항목이 있어서 미국 등에서는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류재단과 지원받는 대학에서 50%씩 5년간 한국학 교수직 설치 예산을 분담하고, 정착 후 해당 대학이 독자 운영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세계에 한국학을 보급하자는 것이다. 본 대학도 2008년에 교수직 설치를 신청했으며 2009년 4월 신학기부터 개강하기로 합의하고 임성준 당시 교류재단 이사장이 본 대학 총장에게 총액 14만6154달러(그중 교수직 설치 비용 6만7000달러)의 재정지원 승인서를 보내왔다. 그에 따라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인 A교수를 채용했으며, 2009년 4월9일 교류재단 이사장이 본 대학을 방문하여 총장과 교수직 설치 합의서 조인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신학기 이수요강에 한국학 과목이 게재되어 학생이 모집되었다. 그런데 3월11일 돌연 지원과 예정된 행사를 취소한다는 e메일이 날아왔다. 참으로 놀랍고도 무책임한 일이다. 채용한 교수와 수강생들을 어찌 하라는 말인가? 결국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여 대학에서 교류재단 부담부분까지 떠안게 됐다. 국제적인 위약이자 배신 행위로 한국에 대한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마저도 2009년 7월15일 ‘나라 이미지 오히려 먹칠한 해외 한국학 지원사업’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교류재단이 작년 12월 리쓰메이칸대, 미국 미네소타대, 독일 라이프치히대 등 외국 7개 대학의 신청을 받아 한국학 연구 지원금을 주기로 약속해놓고 경제사정 악화와 환율 상승을 이유로 뒤늦게 지원 약속을 취소했다. 리쓰메이칸대의 경우 교류재단으로부터 14만달러 지원 약속을 받고 일본 대학 중 최초로 정규 한국학 강좌를 개설해 담당 교수도 선발해둔 상태였다”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의 탄압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온 코리아센터는 개소 13년째, 운영자금난으로 중대한 위기에 빠져 있다. 본 대학 수십명의 교수가 관여하고 한·일 시민사회가 지지해온 연구기관의 소멸은 양국에 큰 손실이 될 것이다. 지금 한·일관계가 최대 외교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한·일 양국의 올바른 역사인식의 보급과 상호 이해를 위해 노력해온 코리아센터와 같은 기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탄압해온 행태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의 해명과 정의 회복작업의 범위에 해외동포 및 해외 연구·문화기관 블랙리스트까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서승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연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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