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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지내고 남은 대추를 가져온다. 대개 닭 삶아 먹을 때 몇 알 던져 넣는 용도다. 없으면 아쉽지만 일부러 사러 나갈 일은 드문 대추. 햇대추를 맛볼 때가 지금이다. 풋대추에 가깝지만 대체로 추석 차례에 올릴 용도로 나온다. 요즘은 ‘사과대추’라 하여 아기 주먹만 한 대추가 과일용으로 나온다. 그래도 여전히 일상에서 많이 찾는 과일은 아니다. 

대추는 분류상 농산물이 아니라 임산물이다. 임산물의 대표적인 품목은 목재이고, 단기소득 임산물 중에는 버섯과 산나물 등이 있다. 그중 밤, 감, 잣, 호두, 대추가 수실류 임산물의 대표선수다. 뜻 그대로 단기로 소득을 올리는 과실이다. 산림청 주도로 임업 및 산촌진흥촉진을 목적으로 단기소득임산물의 경우 작목반을 꾸리거나 저장, 가공시설과 유통을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것 같진 않다. 산이 많은 한국에서는 농촌과 산촌의 구분이 뚜렷하다기보다는 ‘산골’에 살면서 농사도 짓고, 철 따라 나물이나 버섯도 따고 밤나무나 대추나무도 몇 주 가꾼다. 전업화가 이루어진 영역은 아니다.

명절을 맞아 대추경락가가 궁금해서 농산물유통정보 사이트에 접속해도 찾아지지 않아 의아해서 보니 임산물가격정보에 접속해서 따로 알아봐야 하는데 가격 추이가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이유를 찾아보니 임산물이란 것이 워낙 철에 따라 수요가 몰리기도 하고 유통체계가 잡히지 않아서다. 따라서 농산물 경매 단계까지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다. 대추 최대 주산지인 충북 보은군과 경북 경산시 같은 몇몇 주산지에서만 계통출하가 이루어지는 정도이고 알음알음 알아서 팔고 있는 셈이다. 오픈마켓에 들어가서 햇대추 가격을 찾아보니 값도 제각각이다. 농가에 문의해 보니 해걸이로 적게 나오면 비싸고 많이 나오면 싸다며 소득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신다.

통계로 보아도 지난 몇 년 대추 생산량이 많이 줄었는데도 가격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대추를 소비할 사람이 많이 줄어서이다. 제상에 ‘조율이시’로 소환되고 떡집이나 가공식품에 웃기로 올라가는 것은 죄다 외국산이다. 하긴 차례상 물리고 햇대추라고 몇 알 씹어보는 건 나뿐이고 아이들에게 먹어보라 하니 도리질이다. 건대추면 닭 삶을 때라도 써먹을 텐데 풋대추는 몇 알 먹고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볼품없이 메말라 음식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곤 한다.

명절 풍경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차례나 제사도 많이 사라지는 추세다. 차례상도 생전에 고인이 즐겼던 음식을 간소하게 차려 기리는 마음이 더 중하다고 하는데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러면 대추의 운명은 어찌 될까. ‘제사 없으면 과수 농가는 망한다’는 농민들의 농담 같은 푸념도 영 근거가 없진 않다. 명절 전후로 과일 수요가 몰려 억지로 크게 키우느라 부작용도 있지만 또 그나마도 아니면 제값 받고 팔아볼 기회마저 잃는다.

아파트 정원수로 심어 놓은 대추나무를 신기한 듯 바라보니 경비 아저씨가 외려 신기한 듯 날 쳐다본다. 대추가 열리든 말든 노인들 말고는 새댁들은 거들떠도 안 본다며 말이다. 정원수 소독을 했으니 절대 먹지 말라는 식품안전지도를 받는 동안에도 난 진심 대추나무 걱정을 했다. 우리 아이들은 저 대추나무를 알아볼 수 있을까. 대추를 먹어본 기억이 있어야 훗날에도 먹을 텐데. 이유 없이 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소멸의 이유가 서글플 뿐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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