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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지도예찬: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특별전을 관람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조선왕조 500년을 풍미했던 조선지도는 오늘날 동아시아의 지리학 연구와 지도 제작 분야에서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특별전에는 ‘동국대지도’ ‘대동여지도’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요 소장품 외에도 국내 20여개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중요 지도와 지리지가 전시돼 있다.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는 공간을 주제로 한 지도를 만날 수 있다. 태종 2년(1402년) 5월 제작해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로 평가받고, 역사학자 제리 브로턴 영국 퀸메리대학교 교수가 쓴 <욕망하는 지도: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의 한 장을 당당히 차지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다만, 원본을 소실하고 사본조차 일본이 보관하고 있는 탓에 복제본의 일부만 전시실이 아닌 도록에 수록한 점은 아쉽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조선 후기 화가 윤두서가 1710년경 만든 우리나라 전국지도인 ‘동국여지지도’는 대폭 증가한 지리 정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기호를 사용했고, 지도의 우측 여백에 범례를 두어 기호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제작했다. 범례는 현대식 지도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중요한 도구인데, 이 지도는 현존 지도 중 범례를 적용한 가장 이른 사례이다.

시간을 주제로 한 전시실에서 흥미로운 지도는 김수홍이 현종 14년(1673년)에 만든 ‘조선팔도고금총람도’이다. 우리나라 전국의 지리 정보에 더하여 각지의 주요 인물과 역사적 사실을 병기한 한 장짜리 목판본 소축척 전국지도다. 서울을 축척과 무관하게 강조하여 상세 지리 정보를 부각시킨 지도로, 중요 정보를 기준으로 변형시킨 현대식 카토그램과 매우 비슷하다. 중요한 자연지명이나 인문지명을 기재하던 당시 관행에서 벗어나 해당 지역의 중요 인물을 선택해 기재했다. 예를 들어 한산도에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곳이라는 설명을 담았다.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는 김정호가 제작한 전통 지도의 결정판 ‘대동여지도’ 원본 전체를 가로 4m와 세로 7m의 평면에 구현한 것이다. 이전 지도가 행정과 국방 정보에 치중했다면, ‘대동여지도’는 경제와 교통 등 다양한 정보를 수록했고, 특히 도로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사용자가 직접 거리를 계산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전에는 소매에 넣을 수 있도록 작게 만든 지도책인 ‘수진본 지도’, 서울에서 충청도 음성까지의 노정을 그린 지도인 ‘설성이정표’, 전라도에 속한 고을 간 거리 정보를 수록한 표와 지도인 ‘호남도리표’ 등을 전시해 지도의 근대적 발전과 활용을 알려주고 있다. 제2전시실은 현대적 지도 제작 방법과 앞으로 개발될 새로운 지도에 대한 소개와 함께, 증강현실을 지원하는 앱을 다운로드해 관람객이 인터랙티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미래 지도는 과거 지도와 어떻게 다를까? 먼저 제작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다. 현재는 정밀한 항공 사진을 바탕으로 지리 정보를 정리하고 지역을 탐방해 정보를 수정하여 컴퓨터에 입력해 완성하는 방식이다. 해상도가 높은 항공 사진이라도 항공기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나 고층 건물 내부나 지하 시설 등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구글은 스트리트뷰를 촬영하는 차량에 미세먼지 측정 장비를 장착해 미세먼지 농도 지도를 제작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정 지역의 경우 사용자가 드론을 띄워 실시간으로 지도를 제작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라이브드론맵도 이미 등장했다.

지도 제작 기간도 이용자의 편집과 수정이 실시간으로 반영돼 단축될 것이다. 2005년 영국의 비영리기구 오픈스트리트맵재단이 운영하는 오픈 소스 방식의 참여형 지도 서비스인 오픈스트리트맵은 단순 정보 입력은 물론 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 정보를 기록하고 추가할 수 있다. 오픈스트리트맵은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재난 현장에서 구조활동에 활용됐고, 한국의 독특한 지도 관련 법률로 인해 포켓몬고나 웨이즈와 같은 앱에서도 채택해 사용 중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정부 당국의 부족한 정보 제공에 답답함을 느낀 시민은 온라인 지도를 이용해 발병 지역과 병원을 확인할 수 있는 메르스 확산 지도를 만들어 공개하기도 했다.

지도 제작 내용과 분석도 기술 발전의 속도에 발맞춰 발전할 것이다. 사물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실내 공간과 지하 시설에 대한 지도 작성을 통해 공간 정보가 통합될 것이다. 탐사구조 로봇은 지하 시설이나 재난 시 붕괴된 공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효과적으로 구조를 수행할 것이다. 대장내시경 로봇은 사람의 소화기관 상태를 3차원으로 정교하게 재현하고 필요한 경우 용종 절제술과 같은 치료를 수행할 것이다. 실시간으로 통합된 막대한 양의 데이터는 빅데이터 처리 기법으로 분석하고 집계해 웹 기반 정보 제공과 협력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1569년 메르카토르는 세계를 하나의 원기둥으로 나타낸 투영 도법으로 세계지도를 제작했다. 메르카토르는 유럽인이었으므로 자신이 제작한 세계지도에서 유럽을 한가운데에 두었다. 이 지도로 지적 연구뿐만 아니라 무역의 기회도 확장되어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2018년 일곱 살 아이는 지도예찬 특별전을 관람하고 기념품으로 사온 지구본과 구글어스 앱을 이용해 세계 어느 곳이나 중심에 두고 지리 정보를 탐색하고 있다. 2069년 서울시민이자 세계시민인 김정호씨는 자율주행차로 도로를 안전하게 이용하고 복잡한 고층 건물의 최종 목적지까지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획득할 것이다. 지도는 소멸하지만 지리 정보는 위치 정보와 통합되어 어디에나 있게 될 것이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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