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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나는 퍽 한가하다. 어쩌다 닭과 계란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 이맘때 나도 늘 바빴다. 겨울이 오면서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발생하면 이리저리 한마디 보태러 불려 다니곤 했다. 겨울이 오면 무구한 가축들이 ‘예방적 살처분’의 명분으로 땅속에 묻혔다. 그 장면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어 모자이크 처리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 이런 참화를 겪지 않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살처분 현장에 투입된 요원들의 심리치료를 의무화하라는 권고를 했다. 죽이는 사람들의 고통도 중요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동물 안락사’라는 새로운 죽음의 자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유명한 동물권단체인 ‘케어’의 대표가 구조한 동물들을 몰래 안락사시켜왔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자행된 안락사 사건을 마주한 많은 이들이 경악 중이다. 어차피 먹히기 위해 고기로 길러지는 가축 살처분도 참담하건만 인간의 가족으로 길러졌던 동물들은 오죽할까.
한 번도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 반려동물을 봐도 별다른 감정이 일지 않는다. 그런 나조차도 경악스럽다. 여러 언론사를 불러놓고 이루어진 구조 활동 장면이 나가면 후원자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구조쇼’였을 뿐이냐며 후원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 당분간 케어의 박소연 대표에 대한 공분은 계속될 것이고 동물 안락사 문제는 큰 논쟁에 부쳐질 것이다. 사람들은 동물의 권리에 눈뜨기 시작했고, 이를 ‘오버’라고 힐난하지 않는다. 말 못하는 미물이라 하여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 여긴다면 약자를 배척해도 된다는 말과 같다. 동물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사람도 귀하게 여기는 사회인 것만은 확신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계절 따라 철새들은 날아왔고, 도시 사람들은 인지를 하지 못하지만 꾸준히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발견되고 있다. 철새 도래지를 품고 있는 고장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그래서 철새가 도래하기 전부터 끊임없는 예찰과 선제적인 예방 조치로 닭과 오리 등 가금류에 바이러스가 옮겨가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
구제역도 마찬가지다. 발굽 동물들에게 예방접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라고 독려하고, 지자체는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예방에 예비비를 끌어다 쓰면서까지 사전 예방에 사활을 걸었다. 오늘도 축산업 종사자들 휴대전화에는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예방에 힘쓰라는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사건이 터지면 그제야 분노를 퍼붓고 질타하지만 지금과 같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축산 종사자와 관계자들은 발이 부르트도록 뛰고 있다.
동물을 기르고 죽이는 건 모두 인간의 일이다. 인간의 문제를 어쩌지 못한다면 비극은 반복된다. 이번 동물 안락사 사건은 박소연이라는 한 개인을 희대의 악녀로 만들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책임질 수 없지만 유행 따라 동물들을 키우고 쉽게 버린 데에 기인한다. 모든 생명을 다 책임지겠다는 것도 인간의 오만이다. 책임질 만큼만 구조했어야 맞다. 생명을 책임지고 죽이는 일에 대해서는 강한 책임감을 요구해야 하지만 제도는 여전히 미미하고 노력도 부족하다. 이번에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에서 벌어진 살풍경을 보지 않게 된 건 결국 제도 정비와 인간의 노력이 조응했기 때문이다. 동물 문제는 곧 인간의 문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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