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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맡았던 ‘산업론’ 관련 과목이 ‘○○산업과 창업’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청년 취업난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대학 평가는 취업률과 직결되고, 학사의 구성도 오로지 ‘취업’으로 재편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학과목에 ‘창업’이란 단어가 붙어야만 학과도 학교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입으로 창업을 가르칠 수도 없으니 대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조별수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속칭 ‘시간강사배 창업 아이디어 발표대회’. 발표 내용에는 창업비용 마련에 대한 계획과 상권 분석을 반드시 넣으라 했다. 공간 임차비와 각종 세금과 부가세 계산까지 꼼꼼하게 계획을 짜오라는 지령을 내렸다.

온갖 창업 아이템이 쏟아졌다. 휴대폰 소독업체부터 친환경 네일숍까지.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까운 발표였지만 다들 진지했다. 직접 대출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대출길이 막혀 있다는 걸 깨닫자 ‘크라우드펀딩’이나 공모전 상금으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이 많았다. 자기 점포 마련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 ‘푸드트럭’ 창업으로 아이디어가 쏠렸다. 이 과목의 사회적 의의가 있었다면 “‘창업’을 하면 큰일난다”는 것을 미리 체험했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외식 창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확대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외식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사업장과 컨설팅, 홍보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사업의 골자다. 주방 설비가 갖춰진 사업장에서 임차료 부담 없이 실전 경험을 쌓고 세상으로 나가라는 뜻인데 4주에서 최대 3개월까지가 ‘인큐베이팅’ 기간이다.

하지만 이 사업에 맹점이 있다. 일단 계절변수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한국 음식 장사의 큰 변수라면 계절이다. 너무 덥거나 추운 극단의 날씨 때문에 특정 계절에는 줄을 서서 먹지만 또 어떤 계절에는 파리를 날린다. 여름과 겨울, 어느 계절에 장사 경험을 해보느냐에 따라 그 경험치의 폭은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골고루 기회를 줘야 한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한 명의 실업가를 만드는 일이 어디 석 달 갖고 될 일인가. 이런 문제야 고치면 될 것이다.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왜 하필 ‘외식업’이냐는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38개 국가 중 한국은 자영업 비율이 4위다. 자영업 중에서도 외식업 비율은 20%를 넘나든다. 외식업은 단연 폐업 1위 업종이다. 자본과 기술이 충분하지 않아서 먹는 장사에 진입하지만 외식시장 자체가 험지 중 험지다. 지금 버티는 식당들도 실탄 없이 버텨야 하는 전쟁터인데 여기에 신규 진입을 부추기는 외식 창업이 과연 정부가 할 일인가. 청년실업은 푸드트럭 몇 개 성공시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정부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일 뿐 대책도 대안도 아니다.

도시재생과 전통시장 활성화를 내걸고 청년들에게 점포와 컨설팅 지원을 했지만 청년 점포는 텅텅 비어가고 있다. 컨설팅의 부족이었을까, 그들의 의지와 성실성이 부족해서였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가지 말았어야 할 ‘창업’과 ‘장사’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학교에서 학생들 트레이닝 차원에서 진행하면 제격인 일들이다. 진정 청년들을 걱정한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음식 장사 지원이 아니다. 그들이 빚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도록 대학 등록금을 파격적으로 낮추고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맞다. 자나 깨나 창업 조심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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