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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김밥, 컵라면, 밥버거, 바나나맛 우유, 치킨, 무한리필 삼겹살. 편의점 도시락…. 여기까지 읽고 ‘빙고!’를 외칠 수 있는 독자들은 얼마나 있을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이 빙고게임의 테마는 ‘20대의 식사’, 또는 ‘대학생들의 주요 식량’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학기에 경기도의 한 대학에 잠시 여장을 풀고 농업과 음식을 강의했다. 과제로 제시한 보고서 주제는 ‘나의 삼시 세끼 보고서’였다. 자신이 먹는 음식을 일지 형식으로 적고 그 음식이 오기까지의 과정을 조사하면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글로벌 푸드시스템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의도였다. 거기에 더해 내가 먹는 음식들의 정치와 문화적 배경도 적을 수 있다면 음식사 공부까지 저절로 될 터였다. 학습의 일환이긴 하지만 고백하건대 20대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사심도 있었다.

과제를 내주자마자 평소 적막하기만 한 수업시간에 질문들이 쏟아졌다. 일단 많은 학생들이 세끼를 챙겨먹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학교는 먼 데다, 돈도 없다. 밥 먹으라 채근해야 하는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일터에 묶여 있으니 ‘아침밥’을 먹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고 보니 세끼를 제대로 챙겨먹을 여력이 없는 것은 보따리장수인 나도 매한가지다. 이렇게 부유하는 신분인 학생들과 시간강사가 만나 이 시대에 불가능한 ‘삼시 세끼’ 이야기를 나누었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3'에 출연하는 배우 이서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3000원에 억지로 모양새를 맞춘 음식에 질려 굶거나 혹은 바나나맛 우유로 연명하고 있었다. 점심엔 학교식당에서 알량한 ‘학식’을 먹거나, 학교 안에 진출한 편의점의 삼각김밥을 먹는다. 그래도 국물 없이는 밥을 넘기지 못하는 한국인의 피는 면면히 이어지는지 컵라면은 필수 아이템. ‘혜자각’의 편의점 도시락도 인기가 많다. 배우 김혜자씨가 모델인 모 편의점의 도시락을 ‘각 떨어진다’는 뜻으로 저렇게 말한다. 가성비가 좋다는 뜻이다.

형편이 나으면 돈을 추렴해 친구들과 짜장면을 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3000~4000원 내에서 쥐어짜야 한다. 편의점 음식이 좋은 이유는 눈치가 안 보여서이기도 하다. ‘혼밥’하기가 좋다는 것이다. 함께 먹는 일이 점점 불가능해지는 시대에 딱 맞아떨어지는 식사가 바로 편의점 식사다.

학생들은 고등학생 때까지 학교 급식을 주는 대로 먹다 스스로 음식을 선택하면서 어른의 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돈과 시간, 공간이 부족하니 그 선택의 폭은 언제나 정해져 있는 편이다. 저녁엔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지만 가끔 술 모임을 겸해 치킨집이나 무한리필 삼겹살집으로 몰려간다. 먹성 좋은 청년들이 무한하게 먹을 그 삼겹살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무한리필’은 이들에게 가장 매혹적이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 두자! 경제가 발전하면 양보단 질을 추구하는 사회가 도래한다는 소비 이론이 과연 맞기는 한 것일까.

인간은 함께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지었고, 불과 칼로 음식을 만들어 먹다 정분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 더 먹겠다 쌈박질도 하면서 사회를 만들어 왔다. 음식이 곧 인간이자 사회다. 그런데 대학생들의 삼시 세끼 보고서에는 인간의 길이 흐릿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먹고 버티는 삶이 펼쳐져 있을 뿐.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의 출연자들처럼 오로지 먹는 일만 생각하고 출연료까지 받아가는 것이 부럽다’는 보고서 속 문장으로 내 시선이 자꾸만 돌아갔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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