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를 처음 만난 건 2010년이었다. 대학교수로 살던 그가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다기에 선거캠프의 대변인과 홍보위원장을 맡아 잠깐 도운 적이 있다. 그 이전엔 신문 칼럼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도 내 이름을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문 지면에서 처음 봤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지면에서 먼저 만난 사이다.

그는 16대 전북교육감을 거쳐 2014년에도 연임에 성공했다.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 교육감이 2선에 성공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가 교육감이 된 이후 교육 현장이 무척 깨끗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승진을 위한 더럽고 은밀한 거래는 완전하게 사라졌다.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교육정책이 현장에 스며들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나 정말 속상해. 이 아이들은 잠도 한번 푹 못 자보고 죽은 거잖아. 다 살릴 수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빨개진 눈으로 그가 한 말이었다. 그 이후 그의 가슴에 달린 노란 세월호 리본은 떨어진 적이 없다.

그의 아이들 사랑은 특별하다. 학교와 행사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가까이 다가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그를 ‘교육감님’이라는 딱딱한 호칭이 아닌 ‘교육감 아저씨’, ‘교육감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교육감 아저씨는 아이들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기도 하고, 장난기 어린 눈으로 응수하기도 한다. 어딜 가나 아이들이 따라다닌다.

그는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작년에 출간한 <교육감은 독서중>은 그가 읽은 80여권의 책을 정리한 것이다. 교육감 직무도 바쁠 텐데 언제 그 책을 다 읽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북콘서트 현장에서 그가 한 대답은 “책 읽기는 호흡”이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은 나보다 어쩌면 그가 더 많은 책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장 교사들은 그를 ‘독서광’, ‘책 읽는 교육감’으로 부른다.

교사들이 그를 부르는 별칭은 또 있다. 바로 ‘시 낭송 교육감’이다. 크고 작은 행사장에서 인사말이나 강연을 시작할 때 그는 시를 낭송한다.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암송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는 걸 본 적도 있다. 시인인 나를 기죽이려고 그러나 싶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교사들의 독서 모임에 참석해 동시집을 함께 읽기도 했다. 그의 시 사랑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김승환 교육감은 효자이기도 하다. 전남 장흥에서 출생한 그는 초등학교 시절 주산과 암산을 잘했다. 광주 동성중과 광주상고를 가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는 조건이었다. 이후 박사과정을 마치고 법대 교수 시절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를 위해 헌신한 어머니. 여든여섯의 노모를 지극한 마음으로 챙기는 아들이다. 어머니와 아내, 자녀들과 나눈 이야기와 일상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한다.

얼마 전 새해 아침에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삶은 문어를 양보한 이야기를 재치 있게 써놓았다. 평범한 말 속에 담긴 잔잔한 감동은 마치 시처럼 읽는 이의 마음에 가닿는다. 교육감이라는 자리는 일반 시민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일상을 자연스럽게 공개하면서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마음 좋은 큰아빠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김승환, 그는 재임 기간 중 가장 많이 고발당한 진보교육감으로도 유명하다. 6년6개월 동안 17차례 고발을 당했다. 하지만 최근 감사원의 고발을 제외하면 모두 무죄와 무혐의로 판명되었다. 위에서 볼 때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교육감이 다루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김 교육감은 관료가 아닌 아이들과 교사들의 입장에서 교육부를 상대한다. 워낙 곧고 옳은 소신을 굽히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에 비해 국민권익위원회의 ‘2016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결과 전북교육청의 청렴도는 10점 만점에 7.91을 받아 전국 시·도교육청 중 2위를 차지했다. 지난 2012년 이후 5년 연속 2등급 평가는 김 교육감의 청렴의지와 교육청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교육감 취임 후 부정한 돈을 단돈 100원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한다는 김 교육감. 혹시 검은돈을 받는 일이 있다면 바로 자진할 거라 결연히 말하는 그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지켜보아야겠다.

그가 가진 투사 이미지는 실제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금방 무너진다. 선거운동 기간에 나는 그에게 헐렁한 걸음걸이를 고치라고 자주 주문했다. 강직한 투사에게는 너무나 맞지 않아 보이는 재바른 시골 농부 같은 걸음걸이. 그런데 그 농부 같은 걸음걸이가 바로 그다. 성큼성큼 걸어서 남을 위협하지도 않고, 갈지자로 걸어서 남을 곤경에 빠뜨리지도 않는다. 다만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해 걷는다. 헐렁한 걸음 사이로 바람도 지나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지나간다.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그는 계속 걷고 있는 것이다.

2기 교육감을 준비하는 기간에 나는 그에게 ‘큰 귀를 가진 교육감’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위도로 가는 배 위에서, 섬마을 작은 학교에서, 바닷가를 거닐면서 그는 내 말을 경청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발히 소통한다. 페이스북 친구가 5000명 남짓하고, 트위터와 블로그도 활용한다.

온라인 외에도 학생들이나 학부모, 교직원들과의 만남도 활발하다.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학생들이 인터뷰를 먼저 요청해 오기도 하고, 교직원들과의 만남을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편인데, 특히 낮고 작은 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곤 한다. 신체의 귀와 온라인의 귀, 직접 찾아가는 큰 귀를 가진 교육감인 셈이다.

김 교육감은 작고 마른 체구의 사람이다. 그는 겉으로 위엄 같은 걸 내세우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직접 대화를 해본 사람은 그가 얼마나 엄격하고 철저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나는 그가 교육감이 된 이후 도교육청에 드나들지 않는다. 강연 요청이 와도 가지 않는다. 혹여나 불편한 오해를 살까 싶어서다. 또 있다. 술 실력이 나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이다.

안도현 우석대 교수·시인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