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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을 성토하는 중앙대의 긴급 토론회에 토론자로 불려 나갔다. 갑자기 시설 사용허가가 취소되어 오후 4시 행사는 정문 앞 길가에서 열렸다. 해가 곧 기울자 참석자들은 이른 봄의 쌀쌀한 바람에 떨며 자리를 지켜야 했다. 찬 시멘트 바닥에 앉아 두 시간을 꼼짝 않고 귀를 기울이던 진지한 학생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학과 폐지와 단과대학별 신입생 모집이라는 극단적 계획을 학장들에게도 발표 전날에야 알리는 중앙대의 밀실 행정은 요즘 대학에서 흔히 겪는 일이라 놀랍지도 않다. 중앙대 사태는 특정 대학이 아니라 전국 대학을 휩쓸고 있는 갈등의 일각이다. 그 뒤에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 버티고 있다.

토론회 이튿날 교육부, 중앙대 법인, 이명박 정부의 교육문화수석이었던 전임 총장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 대학이 너나없이 인구 감소를 명분으로 삼은 구조조정의 거친 압박 아래 부실과 비리에 멍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확정된 2015년 대학 구조개혁 평가지표에서 신입생 충원율과 취업률 배점을 이전의 공청회 안보다도 높였다. 지방대학 죽이기, 기초학문 몰락을 재촉하여 온 기존의 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가 1단계 평가지표(60점) 중 정량지표(42점)를 활용하여 전국 사립대학 143개교에 대해 실시한 모의평가가 담긴 보고서 ‘대학 구조조정 현황과 전망’ 중에서 두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5등급 중 최고인 A등급이 예상되는 13개교 중 전임교원 확보율이 법정 기준(교원 1인당 학생수 인문사회계 25명/이공계와 예체능계 20명)을 충족하는 대학이 전무할 것으로 평가된다. 교육부가 이 평가항목의 정량지표 만점을 법정 기준이 아닌 전국 대학 평균값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공시정보를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대학알리미’에 의하면 2014년도 교원 1인당 학생수 전국 평균은 28.7명, 교원 확보율은 74.13%이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밑바닥이다. 이처럼 열악한 평균치에 만점을 주는 평가방식에는 학생 감소에 따른 교원 감축만 앞세우는 사고가 숨어 있고, 연구와 교육 여건 개선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둘째, 법인지표(법인전입금 비율 및 법정부담금 부담률)는 평가항목에서 아예 빠져 있다. 말문이 막힌다. 학교 재정을 돕기는커녕 종종 부정한 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학재단들의 성공적인 로비가 간접적으로 입증된다. 작년 9월 1차 공청회에 등장했던 정성평가지표인 ‘학교운영의 투명한 공개와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 고등교육의 질적 발전이라는 국가의 책무는 철저히 외면당하며, 교육부의 책임 방기가 적나라하다.

평가지표 구성이 이 꼴이니 앞의 모의평가에서 1등과 꼴찌 141등의 점수차는 8.3점(최하위 2개 대학 제외)에 불과할 만큼 치열하다. 하위 등급 판정을 받으면 대규모 정원감축 등의 불이익을 당할 절박한 상황에서 0.1점도 아쉬운 대학은 당연히 손쉬운 지표에 눈을 돌리게 된다.

가령 ‘성적분포의 적절성’(1점), ‘엄정한 성적 부여를 위한 제도 운영의 적절성’(3점) 같은 것이다. 이미 많은 대학이 소규모 강의나 외국어 진행 강의에 한해 시행하던 절대평가마저 큰 문제라도 있었던 양 일괄적으로 상대평가로 바꾸고 있다. 기상천외한 지표 개선책들이 졸속 도입되고 있다.

대학의 학사관리는 엄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핵심인 성적제도를 대학평가 점수 따기 탓에 충분한 검토도 없이 타율적으로 바꾼다면, 학생의 혼란과 불만은 가중되고 대학다운 진지한 공부 대신 학점 따기에 휘둘리는 경쟁만 만연할 것이다.

덕성여대 윤지관 교수가 정부주도 대학 구조조정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많은 대학의 무리한 학사구조 개편은 2단계 평가(40점)의 ‘중장기 발전계획과 학과 및 정원 조정의 연계성’(5점)이라는 모호한 정성평가지표와도 관계가 깊다.

최하위 D, E등급 대학은 2단계 평가를 거쳐야 최종 등급을 받지만, 여기서 상위 10%에 들면 다시 C등급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의 사학 중앙대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이 무책임한 대학정책 탓에 신음하고 있는데,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문제투성이 대학 구조조정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일단 막아야 옳다. 그래야 국민적 공감을 얻을 구조조정 논의의 길이 열린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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