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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가 경기 시흥시와 협력해 ‘배곧신도시’에 새 캠퍼스를 건설할 예정이다. 지난해 대규모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이 계획이 신도시의 큰 매력으로 선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서울대 구성원들은 이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대학 운영의 최고 권한을 지닌 이사회도 마찬가지다. 공개된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논의다운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실한 사업에 대해 서울대 쪽의 책임 소재를 가려야 마땅하다.

서울대는 정부의 종합화 계획에 따라 1975년 현재의 관악캠퍼스를 연 이후 꾸준히 캠퍼스를 통합해왔다. 옛 수원캠퍼스의 농생대와 수의대, 연건캠퍼스의 보건대학원 등이 옮겨왔고, 서울대병원과 함께 있어야 할 특수성을 지닌 의대 등을 뺀 조직이 관악으로 모였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에 이 흐름은 역전되었다. 2009년 수원 영통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융대원)을 세웠고, 지난해 강원 평창의 그린바이오 첨단연구단지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인가를 받았다. 이러한 캠퍼스 확산은 장기적 비전에 기초한 일관된 정책에서 나왔다고 보기 어렵고, 의사결정 과정도 허술해 학내에 충분한 공감대가 없었다. 경기도와 협력을 추진하다보니 융대원이 탄생하고, 강원도와 사업을 벌이다보니 첨단연구단지가 생기고 그 김에 대학원을 만드는 식이었다.

자연히 서울대의 공룡화가 심각하다. 서울대와 여타 대학 간의 심한 격차나 지방대학의 위기를 고려할 때 그냥 두고 보기 어렵다. 가령 강원도에도 어엿한 국립대학들이 있는데 왜 서울대가 평창까지 가서 국제농업기술대학원을 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개발도상국의 농업인력 교육을 표방하지만, 그들에게 긴요한 교육훈련과 평창의 첨단연구는 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라 배곧신도시 한라비발디 캠퍼스 ‘헬로 라운지’ 입구 (출처 : 경향DB)


‘서울대 시흥 국제캠퍼스 및 글로벌 교육·의료 산학클러스터’라는 화려한 이름의 사업은 개별 대학이 알아서 할 일이 결코 아니다. 나라 전체의 대학정책이나 지역균형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로 중앙정부도 책임을 느껴야 할 중대 사안이다. 시흥시의 배곧신도시 홈페이지(www.baegot-newcity.or.kr)의 알림마당에 공지된 ‘서울대 시흥캠퍼스 추진에 관한 설명자료’(2014년 11월19일)는 그간의 경과를 요약하고 있다. 이 자료는 최근 몇 년간 서울대가 서울대인에게 알린 것보다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2011년 12월 서울대 총장과 시흥시장이 체결한 기본협약서를 보면, 서울대가 발주한 국제캠퍼스 마스터플랜의 결과보고서가 그 해 9월28일 시흥시에 제출됐다. 어이없지만 서울대에는 마스터플랜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지난해 여름 취임한 성낙인 총장의 대학본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법적 구속력을 갖는 실시협약 체결을 연기했다.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서울대는 시흥시와 2009년의 첫 양해각서 이래 지금까지 6년 동안 2차 양해각서와 부속합의서, 기본협약서, 기본협약서에 따른 부속합의서를 3차에 걸쳐 맺었다. 서울대 캠퍼스에 끌려 아파트를 청약한, 전 재산을 투자한 것과 다름없을 시민들도 있다. 함부로 계획을 백지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모하게 실행하다간 청약자, 시흥시, 건설사, 서울대가 모두 큰 피해를 입는다.

신도시 홈페이지 참여마당의 ‘자주 묻는 질문’란에 위의 마스터플랜에서 뽑은 예정시설 도표가 나온다. 새 캠퍼스는 총 42만1120㎡라고 하니 한국 최대 캠퍼스인 관악 교정(연면적 110만6968㎡)의 38%가 넘는 터무니없는 규모이다. 서울대의 이름을 팔아 신도시의 시세를 올리는 대가로 지자체는 토지를 무상제공하고 건설사는 개발이익의 일부로 학교 시설을 거저 지어준다는 사업방식은 경기침체와 1100조원에 근접한 가계부채로 신음하는 우리 현실을 외면하고 한물간 부동산 ‘대박’의 환상에 휘말리는 짓이다. 과거 이화여대 파주캠퍼스나 최근 검단신도시 중앙대 캠퍼스 계획이 겪은 진통을 직시해야 하며, 연세대 송도캠퍼스의 득실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서울대는 관련 위원회의 연구, 학내외 의견수렴과 공감대 형성을 통해 실시협약을 맺겠다고 지난해 11월 시흥시에 보낸 공문에서 약속했다. 그렇다면 내실있는 대안을 제시할 공개적 논의를 지체없이 진행해야 한다. 자체 감사나 감사원 감사, 필요하면 그 이상의 조치를 통해 이사회, 평의원회, 학사위원회에 보고조차 부실했던 사업 추진의 실상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은 그 선결요건이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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