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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연설에서 대통령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수석대변인이라고 비유했다. 영상자료를 보니 문제의 발언은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였다.

이 대목에서 나 원내대표는 일부러 또박또박 한 단어 한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신의 발언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이미 짐작했던 것이며 혹시라도 자신의 의도가 관철되지 못할까 봐 확실히 해두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며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던 것이다. 이 발언에 항의하는 의원들을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돌리는 장면도 보았다.

절로 웃음이 났다.

연설의 이 대목에는 비유법 가운데 과장, 은유, 인유 등이 사용되었는데 북에 대한 태도를 문제 삼아 시비를 걸던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이제는’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마치 지금까지는 전혀 비난하지 않았는데 마침내 참을 수 없게 되었다는 식으로 과장했고, 마찬가지로 ‘낯 뜨거운 이야기’ 운운하는 부분 역시 한결같이 현 대통령을 비난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과장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과장법은 의도적인 왜곡이지만 아쉽게도 수사학 혹은 비유법에 왜곡이라는 분류항은 없다.

또한 대통령을 수석대변인과 동일시했으므로 은유법인 셈이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으므로 인유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또박또박 말하는 방식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점층법을 사용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더 있지만 각설하고 짧은 문장에서 여러 비유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이 대목이 세심하게 기획되었음을 뜻한다. 예상된 반응에 비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제스처도 기획된 것이라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어떤 식으로 어조를 유지해야 할지, 예상되는 반응에 어떤 제스처를 취하며 대응해야 할지, 사후에 용이하게 발뺌을 하려면 인유를 사용하는 게 나을지 등 여러모로 고심했을 노고가 눈에 보인다.

다양한 비유법을 동원한 이유는 물론 그게 거짓말임을, 밑도 끝도 없이 옹호하거나 대변한 적 없다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고골의 말이 떠올랐다. 고골의 희곡 <검찰관>은 1836년 4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특히 보수파에 큰 충격을 주면서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고골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인지 혹은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러시아를 떠나 외국에 체류했고 40대 중반에 우울증, 정신분열 등으로 고통받으며 끔찍하게 죽었다. 고골은 이 작품의 창작 동기를 “러시아에 존재하던 추악한 것과 모든 종류의 불의를 한데 엮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리게 해보자”는 거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한바탕 웃음, 바로 이게 고골의 남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창작에서 동기보다 중요한 건 무엇이 한바탕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인 듯하다. 고골은 지인에게 보낸 다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한다는 것은 진리를 말할 때에만 나올 법한 진리에 가까운 어조로 자연스럽고 순진하게 거짓을 말함을 뜻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거짓말이 가지는 희극적인 모든 것이 있다.”

태연함과 순진함을 가장한 거짓말, 이미 간파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간파당할 수 없다는 듯이 진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기가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고골이 하지 않은 말을 하나 덧붙이고 싶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진실을 대면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거짓말은 홀로 솟아나는 게 아니라 진실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하다. 나 원내대표가 대면한 적 있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손홍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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