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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이번 총선에는 유달리 비속어와 막말이 시종 문젯거리가 되었다. 몇 년 전 선거에서도 노인 비하 발언이 문제가 되었지만, 이번 양상은 좀 달랐다. 선거운동 중의 발언이 아니라, 몇 년 전에 했던 비속한 말이 들춰진 것이다.
선거에서 막말 폭로가 강력한 힘을 발휘함을 다 알아서인지, 더 자극적이고 강한 수위의 표현이 선택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100분 토론> 방송 시간을 옮기자는 김종훈 후보의 황당한 발언 정도는, 몇 년 전 김용민 후보가 인터넷 방송에서, 혹은 몇 년 전 새누리당 의원들이 마당극 <환생경제>에서 한 욕설 대사에 밀려 그야말로 ‘깜도 안되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노인들과 만난 김종훈 후보 I 출처:경향DB
두말할 것도 없이 욕설과 비속한 표현은 일종의 언어폭력이다. 그런데 욕설을 비롯한 모든 폭력은 종종 쾌감을 동반한다. 인간은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이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하려 한다. 그러니 지체 높은 점잖은 분들이 욕설을 덜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강하고 존중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타가 늘 인정하기 때문이다. 강한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타인에게는 폭력적이니 무슨 폭력이 더 필요하랴. 그에 비해 사회적 지위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욕이나 폭력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욕설에는 자기해방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폭력은 범죄이니, 남에게 피해가 덜 가도록 상당한 조율과 통제가 요구된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욕을 하는 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이다. 욕이 겨냥하는 당사자 앞에서 욕설을 하면 폭력이 되므로,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욕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기능으로만 쓰는 것이다. 그건 마치 미운 사람에게 직접 주먹을 날리면 범죄인 폭력이지만, 그 미운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자기 혼자 허공에 주먹을 날리며 씩씩거리면 그건 그냥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혼자 하는 것이 재미없다면,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 맞추어 욕을 하는 놀이를 하면 자존감 회복과 자기해방 효능은 더 커질 것이다.
그걸 대신 해주는 것이 광대이다. 관중이 욕하고 싶은 것을, 훈련된 말솜씨와 몸짓으로 대신해주니 관중이 얼마나 즐겁겠는가.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욕하고 헛주먹을 날리며 몸과 마음을 풀었으니, 이제 공적 자리에서는 점잖은 말과 예의바른 행동을 하며 살 수 있다.
한 입 갖고 두 말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이란 늘 대상을 전제로 하며, 그 대상에 맞추어 소통의 내용과 표현을 결정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왕이 미워도, 칼자루를 쥔 왕 앞에서 왕을 욕하는 건 죽음을 결심한 후에나 하는 일이다. 술자리에서는 대통령을 동물에 비유하던 사람도, 공중파 생방송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개그에서나 할 수 있는 비속한 표현을, 생중계 되는 국회 상임위에서 발언하는 바보는 없다.
이번 선거에서의 욕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꼬아 버린 것에서 생겨났다. 현재는 정치인이나 이전에 광대 노릇 하던 시절의 욕설을 끄집어내어 공격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용민 후보의 과거 발언은 인터넷에서 개그맨과 함께한 것이고, 새누리당 의원들의 욕설도 자신들끼리 모인 연찬회에서, 게다가 풍자적인 마당극에서 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매체를 통해 알려지는 세상이니, 공공연히 욕설을 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글쎄. 양반님네를 ‘개’로 표현하던 조선시대의 탈춤도 벌건 대낮에 공연되었다. 양반들이 그걸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모르는 척, 못 들은 척, 점잖게 고개를 돌려주는 것이 상례였다. 그건 광대짓이었으니까. 이걸 무시하면 우리는 쉴 새 없이 자기검열을 해대는 괴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건 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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