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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대중문화평론가
주초에 드라마 <추적자>의 ‘스페셜 편’이 두 회씩이나 방영됐다. 올림픽으로 엉킨 방송스케줄 탓도 있었겠지만, ‘선거의 해’ 한복판에 놓인 <추적자>가 올해 가장 뜨거운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하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몇 달 전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이전까지 ‘선거의 해’에는 사극이 뜨는 것이 상례였다. 총선이 있던 1996년 <용의 눈물>에서부터 2007년 <이산>을 비롯한 정조 붐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선거에 주목받는 드라마는 현대물로 초점이 옮겨졌다. 작년 말 <뿌리 깊은 나무>와 하반기로 예정된 <대풍수>까지를 함께 생각하면 정권교체와 관련된 사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의 <한반도>, <더 킹 투 하츠>에서 <추적자>까지 온 흐름을 생각하면 그 변화는 확실해 보인다.
SBS 드라마 <추적자> (경향신문DB)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이전까지의 선거철 사극 붐이 의식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올해 현대물 드라마들은 창작에서 시청에 이르기까지 선거의 해임을 의식하고 이루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즉 <용의 눈물>이나 <태조 왕건>, <이산> 등은 꼭 선거를 의식해서 제작되었다고 보기 힘들고, 시청자들도 그 해의 선거와 드라마 내용을 의식적으로 연결 짓지 않으며 시청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저 선거의 해에는 정치와 권력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시청자들이 부지불식간에 사극에 대한 관심을 더 보이게 되는 현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올해의 드라마들은 다르다. <한반도>, <더 킹>, <추적자>는 바로 이 시대의 정치에 대한 의식적 발언으로 보아도 충분하다. 시청자 역시 그 정치의식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외피가 범죄물의 틀(<추적자>)이든 로맨틱코미디의 틀(<더 킹>)이든 간에, 이 시대의 작가와 시청자들은 정치에 대해 할 말이 많아졌고 드라마를 통해 이 시대 사회현실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어진 것은 분명 큰 변화이다.
작품을 통해 드러난 이 시대 시청자의 정치의식은, 뉴스보다 훨씬 앞서 있는 듯 하다. 정치계, 법조계, 고위관료 등 권력자들이 결탁해 있고, 무엇보다도 언론과의 결탁이 심각하며, 그 뒤에 이를 움직이는 재벌의 거대한 힘이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남북관계가 선거와 여론에 미치는 영향, 다국적 군산복합체의 존재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다는 건, 뉴스가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시청자들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미 국민의 정치의식은 이만큼 높아져 있다.
<추적자>는, <공공의 적>에서 <부당거래>에 이르기까지 영화에서 오랜 기간 축적해온 범죄물의 성과에, 드라마 <로열패밀리> 등을 통해 쌓은 재벌에 대한 비판적 형상화, 영화 <도가니>, <부러진 화살> 붐에서 확인된 법적 정의가 무시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형상화의 성과를 모두 합해놓은 후, 그것을 대통령선거라는 뜨거운 소재와 결합해 성공했다.
거기에 윤기를 더한 것은, 우리나라 드라마의 강점 중의 하나인 ‘명대사’이다. 사실 <추적자>는 대선 소재만 빼버린다면, 영화에서 꽤 많이 보아온 이야기들의 반복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부작인 드라마는 틈틈이 배치된 명대사로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 대목에서는 주인공 백홍석에 비해, 악역인 강동윤과 서 회장의 대사가 훨씬 더 빛났다. 겉으로는 도덕적인 척, 상식적인 척하고 사는 사람들이, 막상 돈과 권력 앞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그것을 갖지 못했을 때에 인간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아포리즘 투의 대사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 다소 과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피비린내 나는 복수담과 건조한 수사물의 조합에 그칠 수도 있었던 이 드라마를, 이 사회의 정치와 권력, 그 속의 우리 자신의 욕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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