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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 | 미술평론가 dogstylist@gmail.com
삶의 터전에 간섭하는 골칫거리 중 하나는 몸이 기거하는 오프라인 집과 정신이 주로 머무는 온라인 집으로 무수히 답지하는 익명의 광고더미이다. 개인 미디어 블로그에 안부 인사를 참칭해서 매달리는 광고 댓글이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고, 집 대문과 문틈으론 호객용 음식점 선전용지가 줄기차게 꽂힌다.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선전지에 기재된 가게와 상품에 대한 댓글이 유도한 블로그는 광고 주체가 누군지 명시하지만, 이 총공세의 주역은 신원미상의 광고 기획사이거나 광고 댓글 프로그램을 제조한 익명의 제작자일 것이다.
일방적으로 원하지 않는 광고더미에 파묻힌 타인의 스트레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수한 선전물을 뿌려대는 자의 안일한 돈벌이 처세를 떠올리면 분노도 가중된다. 결론은 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소행의 배후에는 무서운 익명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춘기 때 익명의 횡포로 씻지 못할 내상을 겪은 나로선, 유독 신원미상의 계략에 쉽게 분개한다. 뒤통수를 쳐놓고 종적 없이 사라져 공정한 반격 기회를 박탈한 행태가 괘씸하고 얄미워서다.
네티즌의 언어폭력과 허위사실 유포를 통제하려고 흔히 보수 정당이 주장한 인터넷 실명제에 심정적으로 동의했던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빙 둘러갔는데, 다수 익명의 무책임에 또 다른 다수의 자존심이 상처 입은 근자의 사건은 지난 4월11일 치러진 총선 결과였다. 한반도 남단의 절반 이상을 붉게 물들인 익명 유권자에 속상했지만, 붉은 선택이야 그들의 것이니 그렇다손 치고, 정작 화가 난 건 지난 4년을 겪고도 ‘OECD 가입국 최하위 투표율’을 수호해 준 46%의 얼굴 없는 자들이다. 투표 불참의 페널티를 투표 참여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역설이 답답하도록 분통 터져도 불참자의 실체를 알 방법이 없다.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심각한 민주당 지도부 (경향신문DB)
중견 미술인과 우연히 정국에 관해 대화 나누다가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며 그가 단호하게 푸념하는 걸 들었다. 2007년 전후의 한국 정치 지형에 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 순간 나는 2007년 이후 정국은 과거로 역행했지만, 아이폰도 얻지 않았느냐며 되물었는데, 그게 무슨 큰 변화냐고 그가 싱겁게 웃었다.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뉴미디어가 여론을 주도한 수도권과 그렇지 못한 지방이 정반대의 총선 결과를 얻은 건, 단순한 여촌야도의 공식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또 전부 아니면 전무인 선거 결과 앞에 이런 위안이 그저 싱겁겠지만, 붉게 물든 영남 지역조차 정당 득표수(율)에서 새누리당 지반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객관적 통계로 확인됐다. 느린 속도지만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4·11 총선 이후 전문가의 진단과 처방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좌절하면 배신한다’며 좌절한 유권자를 격려한 고재열 ‘시사인’ 기자의 충고도 빛난다.
정치란 삶의 형편을 올바른 반석 위에 올리는 작업이다. 유권행위는 그 일환인데 투표 결과가 구태 정치의 귀환을 가져왔어도 유권자 개인이 바른 삶을 견지한다면 대체로 살 만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좌절했다고 구태정치의 소굴로 투항하지만 않으면 된다. 만족스러운 선거 결과를 얻진 못했어도, 한 후보자의 과거 막말에 속상해서 혹은 그 밖의 여러 이유를 빙자해서 유권행위를 포기한 46% 속에 자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자존심을 지킨 올바른 정치 행위를 했다고 나는 본다. 그리고 역사란 진보와 퇴행을 반복하지만, ‘결국 앞으로 전진’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상처는 초저속일지언정 기어이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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