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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이 마사시 다이쇼대학 객원교수는 2017년 발간한 <미래 연표>에서 현재 일본이 마주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인 출생아 수의 감소, 고령자의 급증, 사회의 노동력 부족,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서로 얽혀서 발생하는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에 ‘고요한 재난’이라고 이름 붙였다. 2016년 일본의 연간 출생아 수는 97만6979명에 그쳐 역대 최초로 100만명 이하로 떨어졌고, 1949년 269만6638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3분의 1로 뚝 떨어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출생아 수의 감소 추세가 계속되어 2065년에는 55만7000명, 2115년에는 31만8000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고도 경제 성장을 일군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2017년 한국의 연간 출생아 수는 35만7700명으로 전년보다 4만8500명(11.9%) 감소했고, 출생아 수가 40만명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보여주는 합계출산율도 전년(1.17명)보다 0.12명(10.3%) 감소한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2015~2065)’에는 인구 감소 시작 시점이 2032년으로 돼 있지만, 출생아 수가 다시 늘지 않으면 이 시점이 2024년이 될 수 있다고 자체 진단하기도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저출산이 계속되면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고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면 사회 전 분야에서 인재를 배출할 수 없게 되고 군인, 경찰관, 소방관 등 젊은 힘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사회는 급속히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인재가 많을수록 노력하고 경쟁하여 전체 수준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젊은 세대가 줄어들면 혁신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음악이나 패션 등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는 분야는 젊은 세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는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활력을 잃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해왔다. 저출산은 출산·양육 지원뿐 아니라 일자리·주거·청년취업 등 다양한 사회문제의 개선이 이뤄져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백가쟁명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백약무효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통계청이 주최한 ‘2015년 인구총조사 스페셜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던 세계적인 통계전문가이자 얼마 전 고인이 된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 의학원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페미니즘을 제시했다.

로슬링 교수는 단순한 인구정책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며 페미니즘을 통해서 변화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과거의 여성과 달리 지금 여성들은 일도 잘해야 하고 가정일도 잘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부담을 지워서는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 스웨덴은 인구정책이 아니라 양성평등과 관련된 변화에서 출산율이 반전됐다. 로슬링 교수가 말하는 양성평등은 전통적인 역할의 파괴다. 육아와 부모 봉양은 아내 일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아내가 일을 하고, 남편이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도 있다. 남녀 역할이 유연해질수록 사회 전체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로슬링 교수는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도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하고,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웨덴에서는 싱글맘이나 그 아이들에 대한 낙인이 없다. 동성애에 대한 생각도 바꿔야 한다. 스웨덴은 2명의 장관이 동성애자이고 주교도 동성애자다. 얼마 전 아이 생일 파티에 참석한 친구 20여명 가운데 2~3명은 엄마가 둘이거나 아빠가 둘인 동성애자 커플의 아이들이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유연해져야 아이 키우는 데 부담이 없어지고, 출산율도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로슬링 교수는 여성 혐오에 대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스웨덴도 50년 전에는 똑같았지만,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어 남자도 살기 좋아졌다. 로슬링 교수는 페미니즘이 발달할수록 남녀의 기대수명 차이가 줄어드는 현상에 주목하여, 최종목표는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며, 삶의 질을 개선해 더 나은 사회에서 다 같이 살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임을 역설했다.

미래학자로 유명한 자크 아탈리 전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도 1998년 발간한 <21세기 사전>이라는 책에서 18세기가 그랬듯 21세기도 여성의 시대가 될 것임을 예측했다. 남녀평등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게 될 것이고, 남녀 간 차이뿐 아니라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여성성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하고 요구하게 될 것이다. 아탈리는 여성이야말로 교육, 사회보장제도, 분배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사회 발전의 핵심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여성에 대한 탄압이 심해짐에 따라 권력을 빼앗거나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의 형태를 띨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소설가 조선희가 12년 만에 펴낸 신작 <세 여자>는 1920년대 ‘신여성’이자 ‘마르크스 걸’로 성장해 한국 정치사상 전무후무한 ‘여성 혁명가’로 기록된 세 여자, 허정숙·주세죽·고명자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허정숙·주세죽·고명자는 임원근·박헌영·김단야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졌다. 21세기 허정숙·주세죽·고명자는 젠더 혁명가로 인구절벽이라는 ‘고요한 재난’을 극복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21세기 남성의 생존법은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담벼락에서 맨스플레인을 일삼거나 모 정당 후보의 선거 벽보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 눈앞에 다가온 젠더 혁명에 동참하는 일이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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