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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종편 채널에서 2030세대의 통일 및 대북 인식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내가 출연할 일은 평생 없으리라 여긴 채널인지라 머뭇거리며 설명 듣던 것은 잠시다. 일러준 촬영일시는 어차피 내게 무리였기에 마음 편히 거절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일은 나의 통일 및 대북 인식을 정리해보는 계기가 됐다. 일단 나는 ‘통일’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폭력성을 내재한 단어라고 느낀다. 수십년간 나뉘어 존재했던 것을 하나로 합치는 일은 세가 약한 쪽이 강한 쪽에 흡수되는 양상일 때가 많다. 누군가를 무릎 꿇리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방안이 덜 폭력적일 것이다.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최근 회담 전까지 북한 정권은 돌출적이고 호전적인 언행으로 대화를 어렵게 하고, 타국민의 불안을 자극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권력을 쥔 자들에게 책임을 돌릴 문제지, 평범한 주민들까지 싸잡아 증오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곳에도 우리처럼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북한’이라고 뭉뚱그려진 대상을 싸잡아 혐오하며 교류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준비된 식민지로 여기며 입맛 다시는 태도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유다.

북한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일이 국내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과, 보편 시민의 삶을 개선하려는 정책적 노력을 짓밟는 흔한 수법으로 쓰인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이와 같은 태도는 이전 정권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 풍부한 광물, 토건 사업을 벌일 공간을 생각하면 “통일은 대박”이라는 주장들. 여기에 상대에 대한 문화적 이해, 발붙이고 사는 주민들의 욕망과 권리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올해 남북정상회담은 이런 지난한 현실의 종식을 기대하게 했다. 북한의 지도자가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상대일 수 있다는 신뢰, 북한의 지역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한국 사회에 형성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당일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대동강맥주, 평양냉면, 개마고원 트레킹 등이 차지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나 역시 교역과 관광의 물꼬가 트이고, 북한이 안전한 국가라는 확신을 준다면 평양의 시가지를 구경하고 냉면과 맥주를 먹고 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동네 편의점에서 대동강맥주 4캔을 1만원에 구매할 수 있고, 홍대에 옥류관 분점이 생긴다면 더욱 좋겠다.

이처럼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하지만, 이산가족의 고통 경감과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그리고 냉면과 맥주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남한과 북한이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문화적으로 교류하여 일반 시민들도 그곳에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내 입장은 밀레니얼세대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출생한 밀레니얼세대는 청소년 시기부터 인터넷을 사용해 개인 단위로 국제적 교류를 하는 경험에 익숙해졌기에 세계 시민의 감각을 지닌 동시에 개인주의적이고 리버럴하다고 분석된다.

그런데 이런 분석과 정반대의 현실을 목도할 때도 많다. 내 또래에서 집단주의, 전체주의, 인종주의적 사고를 가진 이들의 수가 적지 않음을 발견할 때다. 자기와 다른 존재에게 낙인을 씌우고 재갈을 물리며 존엄을 짓밟는 일을 일상적으로 하는 청년들은 세대적 분석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내 대북인식도 2030세대 보편의 것이라 말하면 안되갔구나….

그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내 경험과 생각을 발화하는 까닭은, 개개인의 경험과 의견이 충분히 모이고 검토된 뒤에야 어떤 집단에 대해 조금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엇보다 지금 북한에 살고 있는 다양한 계급의 청년과 여성의 진솔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들의 욕망과 분노와 환희를, 삶의 배경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가치관을. 북·미 회담 이후 항구적 평화체제가 구축되어 우리에게 서로를 더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지기를 희망한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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