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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미국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자리한 컴퓨터역사박물관에서 스무 명 남짓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모인 작은 워크숍이 열렸다.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현안은 무엇인가(what is at stake)’였다. 작년에 한국 사례에 대한 발표를 부탁하는 초청이 왔을 때, 무엇보다도 한국 바깥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냉큼 수락했다. 워크숍에서는 ‘기술적 실업’의 문제에서부터 국가 인공지능 전략에 대한 평가까지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몇 년 전 시작된 한국 사회의 4차 산업혁명앓이는 글로벌 기준으로 보았을 때 유난스럽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구글에서 집계한 검색어 순위를 지역별로 나누어 보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검색된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을 100으로 놓았을 때 2위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91, 3위 싱가포르는 60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인들이 최근의 기술 변동과 그 함의에 대해 보이는 깊은 관심을 반영한다. 각계각층에서 마련한 4차 산업혁명 관련 토론회와 교육 프로그램이 한동안 봇물을 이뤘다. 이 문제에 대한 종합적 국가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활동 중이기도 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번 워크숍에서 확인한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과 불안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준비 중인 국가 전략과 유사한 형태의 계획은 이미 독일과 중국에서 나왔다.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을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일 일종의 슬로건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에 따른 기술적 실업 문제와 노동의 미래에 대한 우려는 이미 세계적인 현상이다. 노동의 소멸에 대한 대책으로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의 역시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워크숍을 조직한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 패트릭 매크레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전 지구적 현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논의 주제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자체를 둘러싼 문제들이다. 1~3차 산업혁명들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각종 변화는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의 근본적인 변동을 가져올 것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의 틀은 새로운 변화를 해석하기에 적절한가? 세계경제포럼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유포자들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가? ‘산업혁명’이라는 담론으로 현재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의 효과는 무엇인가?

한국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미 제기되었다(송성수, ‘역사에서 배우는 산업혁명론’). 하지만 총론 수준의 논의를 넘어 구체적인 층위에서의 다양한 분석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큰 주제는 기술 변화에 따른 분배의 문제, 혹은 사회정의의 문제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이 제시하는 빛나는 미래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21세기 들어 늘어나고 있는 소득격차는 기술 변화가 그 주요한 동인인가?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노동은 과연 소멸할 것인가? 사회과학자들에게 기술 변화가 노동 과정에 미치는 영향은 오랜 탐구의 주제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변화인가? 기술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공정한 분배를 이루어낼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담론장은 상당 부분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제기하는 각종 윤리적 이슈들이다. 2016년 7월 미국 댈러스 경찰은 총격사건의 용의자 미카 존슨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사살했다. 사살에 이용된 무기는 첨단 군수 업체인 노스럽 그러먼(Northrop Grumman)에서 개발한 리모텍(Remotec)이라는 로봇이었다. 이 사례는 군사용으로 개발된 기술을 민간 영역에서 사용하는 것을 둘러싼 논쟁을 야기했다. 또한 첨단 디지털 기술은 과거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프라이버시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진전에 따라 디지털 프라이버시 문제는 컴퓨터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영역에서도 다양한 문제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4월, 세계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카이스트 국방인공지능 연구에 항의하면서 보이콧을 선언했다. 한국은 이제 서구 선진국에서 검증된 결과를 빠르게 추격하는 전략에서 벗어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과학기술 공동체 역시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논의들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해석과 입장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에는 여러 층위의 기술이 포함되어 있고, 그에 따라 제기되는 문제의 해결 방안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논의는 구체적인 테크놀로지와 시스템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보편적 문제와 지역적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워크숍에 참가한 한 역사학자는 아마존닷컴이라는 첨단 정보기술(IT) 업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전통적’ 제조업을 분석했다. 모든 것을 디지털 신호로 처리하는 기업이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양의 공업 생산량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이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제조업의 영속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재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고용률 저하는 4차 산업혁명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추상과 구체, 보편과 지역이라는 두 축이 이루는 공간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서울과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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