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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1일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과 부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이다. 검경 간 수직관계는 해방 이후 친일 경찰에 대한 불신 등으로 1948년 검찰청법에 “경찰은 범죄수사에 있어 검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등 역대 정부가 수사권 조정을 시도했으나 검찰의 집단 반발 등에 막혀 번번이 좌절된 바 있다. 그래서 이번 조정안은 검경의 70년 해묵은 갈등에 종지부를 찍은 역사적 합의라 평가할 만하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최초로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두 장관이 조정안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조국 민정수석이 21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실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조정안은 경찰이 보다 많은 자율권을 갖고, 검찰은 사법통제에 주력하는 게 핵심이다. 검찰과 경찰이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상호협력 관계로 바뀐 것은 선진 수사구조로의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다. 미진한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검찰의 인지·특수수사를 그대로 둔 것은 검찰개혁을 바라는 시민의 뜻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은 검경이 각각 독자적 수사권을 갖되 검찰은 통상 2차 보충적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검사의 직접수사는 전체 사건의 0.3%로 전국 50개 지검 중 특수부가 있는 곳은 도쿄·오사카·나고야 등 3곳에 불과하다. 우리도 앞으로 검찰 직접수사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사권 강화로 경찰 권력만 비대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공룡기관이 탄생했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함으로써 이른바 ‘사건 암장(暗葬)’이 가능하다는 데 대한 걱정이 크다. 조정안은 불기소(무혐의)할 경우에도 결정문과 사건기록등본을 검찰에 전건(全件) 송치토록 했지만, 법률적 판단 권한을 경찰에 부여하는 것은 근대 사법의 대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밝힌 행정·사법경찰 분리, 경찰위원회 실질화 등의 견제장치 외에도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개혁의 계기로 삼아 공정성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와 인권보장, 경찰관 자질 향상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수사권 조정의 큰 줄기로 자치경찰제 도입 청사진이 담긴 것은 이미 예견됐던 바다. 자치경찰제가 단순히 경찰 권한 분산에 그치지 않고 지방분권 차원에서 양질의 치안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정밀한 준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 조정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수사권 조정안은 여야 합의를 거쳐 입법화돼야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본게임은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검경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공방을 벌이는 것은 볼썽사납다. 또다시 국회가 검경 간에 더 많은 권한을 챙기기 위한 밥그릇 싸움판이나 권력게임의 장이 되어선 곤란하다. 수사권 조정은 검경의 기득권이 아니라 시민의 안전과 인권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국회는 권력기관 개혁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속도를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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