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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병원 인공지능 매니저 최용선은 클레임 고객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402호 병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걸터앉은 김영환 환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앞에서 쩔쩔매던 담당 간호사는 용선을 보자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용선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다소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저희 병원의 인공지능 의사에 대해 불만이 있으시다고 해서 왔습니다. 제가 담당자입니다.”
소리를 지르느라 얼굴이 붉게 상기된 김영환이 용선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지난해 중국 의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인공지능 로봇 ‘샤오이’. 연합뉴스
“인공지능 의사가 모든 걸 다 예측할 수 있다고 광고한 것 맞지? 그래서 나도 인공지능 환자로 가입을 했단 말이야! 이걸 보라고!”
영환은 손목에 감긴 녹색띠를 두드렸다. 자신에 관한 의료 정보를 인공지능 의사에게 제공한다는 표시였다.
“그런데 어젯밤에 갑자기 목덜미가 뻣뻣해져서 죽는 줄 알았어! 인공지능 의사랍시고 추가 비용을 더 내는데 아무것도 예측하질 못했다고! 이거 다 사기 아니야? 괜히 첨단이랍시고 돈만 더 받아먹는 거 아니냐고? 의사들이 이래도 돼?”
담당 간호사는 환자의 긴급 상황이 지병인 신장 질환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용선은 침대 옆에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병실 바닥만 보고 있는 보호자를 흘끗 쳐다보았다. 아마 부인인 것 같았다. 용선은 수많은 클레임 고객을 상대한 숙련자답게 보호자에게 물었다.
“환자분의 건강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묻겠습니다. 어제 평상시와 다른 일 없었습니까? 예를 들어 문병객이 왔다든지….”
보호자가 영환의 눈치를 보다가 대답했다.
“둘째 애가 면회를 왔다 갔어요. 1년 만에 만난 터라….”
용선은 환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1년 만에 만나는 아드님께서 문병을 오셨군요. 혹시 불쾌한 얘기가 오가지 않았습니까?”
“그 녀석이 와서 대들긴 했지만…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용선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손목에 차고 계시는 녹색띠 때문에 여쭤본 겁니다. 그 띠는 지금까지 환자분께서 만나본 모든 의사의 공식적인 의료 기록 외에도 의사가 남긴 메모까지 전부 제공하겠다는 표시죠.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녹색띠 환자는 정신과 상담 내역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뭐야! 지금 내 정신이 이상해서 이런다는 거야?”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인공지능에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공개자’에게도 등급이 있습니다. 녹색 공개자는 선별적으로 정보를 제공합니다만, 그보다 높은 청색 공개자는 살면서 남기는 모든 기록을 전부 공개합니다. 만약 환자분께서 청색띠를 차고 계셨다면 아드님과 어떤 사이인지, 재산 관리 상태는 어떤지, 주변에서 평하는 성격은 어떤지 모조리 저희 인공지능 의사에게 전달됐을 겁니다. 그러면 문병 오신 아드님이 환자분 상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할 자료가 마련됐겠죠. 더 나아가 아드님의 문병 자체를 건강상 이유로 막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영환이 물었다.
“사람이란 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투성이일 수도 있는데, 그걸 전부 공개하라고?”
“물론 결정은 어디까지나 환자분께서 하실 일입니다. 사람마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니까요.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든, 개인사를 묻어두는 쪽을 선택하든 전적으로 환자분 마음입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녹색띠 서비스를 철회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청색띠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연회비는 올라갑니다만 인공지능 의사가 환자분의 상태를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늘 그렇듯 보안은 철저하게 지켜드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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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공지능이 환자의 사망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 기사는 ‘네이처’지에 발표된 논문에 근거하고 있다. 해당 논문은 의사의 메모를 포함한 환자의 전자건강기록을 구글에서 제공하는 자료 포맷에 맞춰 변환하고 의료 인공지능의 학습 자료로 사용한 결과를 알려준다. 그 결과는 여러 가지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자의 입원 기간과 퇴원 시기를 예측할 수 있고, 필요한 검사를 미리 준비하거나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도 있다. 사망 위험이 높은 시기를 예측하는 것도 그 활용 방법 중 하나다. 물론 목표는 어디까지나 환자가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다.
현재 집중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은 방대한 자료가 준비돼야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개인에게 특화된 결과를 얻으려면 개인에게 고유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제공해야 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의료 기록도 분명 사생활의 영역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예방과 치료를 위해서라면 정보 제공을 감수할 사람은 점점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한 각종 산업형 서비스 역시 개인과 관련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점점 적극적으로 달려들 것이다. 내가 SNS에 남겼다가 지운 수많은 글뿐 아니라 친구와 나눈 잡담들, 평생에 걸쳐 해온 선택과 행동까지 전부 자료가 되고 인공지능에 입력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과연 ‘나’라는 정보를 제공하고 얻을 대가가 얼마나 가치 있을지 본격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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