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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섬으로 가는 바다는 더없이 평화로웠다. 하늘은 맑고 높았으며, 잔잔한 바다에 퍼져 나가는 윤슬은 아름다웠다. 그곳의 바다는 망망대해가 아니었다. 바다는 섬과 섬을 잇는 뱃길이었다. 아득히 멀리 있는 섬은 푸른 등을 드러낸 물고기처럼 보였다. 섬은 산등성이처럼 보이는 등뼈를 움쭉거리며, 모래사장처럼 보이는 지느러미를 푸드닥거리며 바다를 떠다니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섬은 살아있다. 그리고 그 섬에는 거친 땅을 일궈 길을 내고 논밭을 만들어 아이들을 키워낸 사람들이 살아있다.
섬 한가운데 논밭 사이로 우뚝 서 있는 초등학교의 전교생은 24명이었다. 세 명뿐인 6학년은 유치원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쭉 한 반이라고 했다. 한 형제 같겠다고 하니, 여자아이가 옆에 있던 친구 목을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한 형제처럼 싸우지요. 실제로 그들의 형제 또한 모두 이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학교의 인맥은 친구의 동생, 동생의 친구, 친구의 누나 뭐 이런 식으로 얽히고설켜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다.
5, 6학년 독서활동 수업 시간에 짝이 맞지 않아 내 짝이 되어버린 5학년 아이의 여동생은 1학년, 3학년이라고 했다. 아이는 나와 함께 연극 대본을 같이 쓰는 내내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잘 얘기했다. 맞춤법을 많이 틀리긴 해도 글씨를 제법 잘 썼고, 긴장해서 더듬긴 했어도 대본을 잘 읽어냈다. 그 아이가 돌봄교실에서 따로 공부하는 아이라는 것을 선생님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이의 부족함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온종일 아이 곁에 붙어 있는 선생님은 교실 밖에서도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아이는 별일 없이 전교생 앞에서 대본 낭독까지 당당하게 잘해냈다. 점심시간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동안에도 아이는 동생들 얘기를 재미나게 잘했다. 어쩌면 아이의 부족함은 세상이 만들어낸 엄격한 기준 때문에 도드라진 것이 아닌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디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섬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아이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떠올랐다. 섬이 그랬듯이 섬에서 살아낸 사람들이 그랬듯이 아이도 잘 버텨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다가 섬을 품듯 세상이 그 아이를 잘 품어줬으면….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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