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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생체공학범죄 수사부 고여진 형사와 차명수 형사입니다.”

인터폰에 대고 신분을 밝힌 차명수는 말을 마치고 숨을 몰아쉬었다. 차명수보다 한참 선배인 고여진은 긴장한 후배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차명수가 발령을 받은 지 한 달밖에 안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찾아온 범죄 현장은 재계 순위 12위인 청서그룹 창립자의 하나뿐인 손주, 이세연의 여러 집 중 한 곳이었다.

명수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거실에 도착할 때까지 도망치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자동휠체어에 탄 이세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세연, 28세. 여진이 용의자의 나이를 떠올리고 외모를 관찰하는 동안 명수가 디지털 수색영장을 들이밀었다.

“상기인이 유전자시술법을 위반했다는 정보가 있어 수색영장을 집행할 예정입니다. 협조하지 않을 시….”

이세연은 무릎을 덮고 있던 얇은 담요를 걷어내고 가볍게 일어서더니 옆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았다.

“역시 휠체어는 불편해요. 변호사들은 안 앉아봐서 모른다니까. 필요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협조하고 자백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전부 털어놓으면 빨리 끝낼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녹음이든 뭐든 해주세요.”

명수가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자 여진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연은 명수가 탁자에 내려놓은 자백 인증용 카메라를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저 이세연은 다섯 가지 유전자 편집 시술을 받았습니다. 시술한 기술자는… 도망친 것 같군요. 그 가운데 세 가지는 집안 내력인 유전병 인자를 제거하는 시술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별도 자료로 제출하겠습니다만 이미 합법화된 시술로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둘은 위법일 겁니다. 지능을 높여주는 시술과… 또 하나가 뭐였더라… 아, 언어구사능력을 향상시키는 시술입니다. 언젠가 태어날 제 아이를 위한 시술이죠. 이것도 위법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자료로 지금 형사님께 제출하겠습니다. 더 남은 게 있든가요? 일정도 충분히 비워뒀으니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면 바로 따라가겠습니다.”

명수는 차의 룸미러로 뒷좌석에서 잠들어 있는 이세연을 흘끗 쳐다보고 말했다.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는 소리를 완전히 막아주는 차음유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선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 제가 신참이라 아직 적응을 못하는 건가요?”

“시대가 변해가는 도중이라 그런 거야. 지금 당장은 법으로 타고난 능력을 향상시키는 시술은 못하게 돼 있지. 그런데 어기면 어떻게 될까. 원상복구를 시킬 순 없어. 사람의 능력을 저하시키는 시술도 불법이거든. 남는 건 적지 않은 벌금인데, 얼마가 됐든 내고 전과가 남아도 상관없고 언론에 나가도 상관없다잖아. 비용까지 생각하면 이토록 뻔뻔하게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건 저런 자들밖에 없겠지. 지금은 그래.”

여진은 자율주행차의 내비게이션 화면을 습관적으로 확인하고 덧붙였다.

“내년엔 법이 바뀔지도 몰라. 앞으로 계속 바뀔 수도 있고. 시민부터 철학하는 사람들까지 계속 싸우고 있으니 언젠간 결론이 나겠지. 우리는 그때그때 현행법을 어긴 사람을 찾고 신병을 확보할 뿐이야.”

‘유전자 가위’라는 용어로 더 잘 알려진 CRISPR(크리스퍼)-Cas9 기술은 유전자 편집을 현실 영역으로 한층 더 끌어당겼다. 크리스퍼 시스템을 임의로 편집하면 사람의 선천적인 특성을 유전자단에서 바꿀 수 있다. 또한 신생아의 배아 속 유전자를 직접 편집해 이른바 ‘맞춤형 아기’를 낳을 수도 있다. 상상 속 기술이 현실에 접근하면서 그에 따른 윤리 문제 또한 오래 외면할 수 없는 곳까지 다가온 것이다.

정확하고 부작용 없는 유전자 편집은 아직 불가능하지만, 독립 단체인 영국 뉴필드 생명윤리 협회가 미래에 우리 모두가 당면할 윤리적 문제에 대해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조심스러운 예측으로 가득하다. 협회는 긍정적인 시술, 예를 들어 치명적인 유전 질병 요인을 배아에서 제거하는 시술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질병 차단 수준을 넘어서는 유전자 편집이다. 극단적인 기후에 적응하기 쉽도록 만들거나, 감각수용력을 높이는 등 인간의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시술이 이에 해당한다. 보고서는 이 문제에 대해 중립을 지킨다. 즉 권장하지도 않고 비윤리적이라고 분류하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는 결국 ‘더 나은 사람’의 정의와 연결되는, 매우 본질적이고 중대한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유전자 편집뿐 아니라 ICT기술과 뇌과학 등 첨단 학문과 기술은 곧 우리 스스로 인간과 사회의 본질 및 한계를 재정의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힘을 주어 말하고 싶은 부분은 ‘곧’이다. 구태의연한 기준과 편견으로 자신에게 족쇄를 채울 때는 지났다는 얘기다. 지금은 그보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다른 이가 아니라 우리의 능력이 열어준 새 가능성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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