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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쓰는 상투적 표현 가운데 이런 게 있다. ‘과욕이 부른 참사.’ 유치하다고 여겼던 이 표현에 갈수록 공감을 느낀다. 기자, 특히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 일할수록 인간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대형 사건들을 많이 접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표현을 처음 접한 때는 1995년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였던 것 같다. 500명 이상이 숨지고, 9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대형 참사였다. 참사에 이르는 과정은 탐욕과 비리의 종합선물세트였다. 종합상가 용도로 설계된 건물을 전문가의 정밀진단 없이 백화점 용도로 변경했고, 완공 후에는 매장 확대를 위한 무리한 건물 구조변경을 계속했다. 공간을 넓히기 위해 수시로 벽을 허물고, 설계에 없던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각층 바닥을 뚫었다. 그러한 건물이 온전할 리 없었다. 개장 직후부터 이상징후를 보이더니, 급기야 사고 발생 당일엔 오전 8시부터 5층 식당가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는 등 건물 곳곳에서 붕괴 조짐이 발견됐다. 하지만 이윤에 눈이 먼 경영진은 영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쉬쉬하며 날이 어두워지면 보수공사로 땜질할 모의만 했다. 이후로 취재한 각종 화재 참사, 선박 침몰, 교량 붕괴 등 무수한 사건·사고의 이면에서 나는 거의 언제나 인간의 탐욕과 비리를 마주했다.

지난 17일 발생한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 현장인 경북 포항시 남구 해병대 항공전단 활주로에 20일 시커멓게 탄 헬기 기체 잔해와 부러진 프로펠러들이 흩어져 있다. 군은 이날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연합뉴스

5년 만에 다시 사회부로 돌아왔다. 며칠밖에 안됐는데 여기저기서 과욕의 그림자를 본다. 지난 17일 해병대 마린온 헬기가 추락해 5명이 숨졌다. 마린온은 ‘방산비리’ 의혹에 연루됐던 국산 헬기 수리온을 개조한 헬기다. 수리온의 비리 여파가 마린온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군 조사위원회는 설계 결함이 사고 원인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사고 원인 확인에 앞서 수출에 차질이 생길까 먼저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출 후 해외에서 사고를 일으키면 수습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라 망신이 걱정된다.

웃으며 만나던 법관들의 찡그린 얼굴을 TV에서 보는 일도 곤혹스럽다. 수많은 판결을 내리면서 세상에 억지로 되는 일이 없음을 이야기했을 고위 법관들이 왜 그리 억지스러운 일을 했을까. 상고법원이 뭐 대단한 거라고. 법관이 이미 높은 자리인데, 승진은 또 뭐라고….

라오스 남동부 아타프주 세피안·세남노이댐 붕괴 사고로 고립됐던 주민들이 24일(현지시간) 보트로 구조된 뒤 걸어가고 있다. 라오스 정부는 아타프주 세남노이지구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구조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재민 6600명 중 절반 이상이 주택 지붕과 나무 위 등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아타프 _ 로이터연합뉴스

멀리 라오스에서 전해진 사고 소식에도 과욕의 그림자는 어른거린다. 수력발전을 위해 세운 댐이 유실돼 수십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실종 상태다. 사고 당시 쏟아져내린 물이 국경 너머 캄보디아에까지 흘러가 5000명 이상이 대피했다고 한다. 이 댐을 건설한 기업이 한국의 SK건설이다. SK건설은 댐 공사를 예정보다 4개월이나 앞당겨 마치고 담수를 시작했다. 공기를 단축한 공로로 발주처로부터 2000만달러의 보너스도 받았다고 한다.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이 사고의 원인일 수 있다는 얘기다. “향후 예상치 못한 리스크를 대비해 계획보다 4개월 앞서 댐 공사를 마무리하고 담수를 시작했다”는 SK건설의 설명이 맞기를 바란다.

공사를 맡긴 라오스도 국제적으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라오스는 수력발전을 통해 생산한 전력을 주변국에 수출하는 이른바 ‘동남아시아 배터리’ 계획에 매진해왔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30여년간 유치한 투자액의 3분의 1인 66억달러(약 7조4350억원)를 메콩강 유역의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쏟아부었다. 2017년 현재 라오스에서 가동 중인 수력발전소는 46개,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 단계에 있는 발전소만 54개라고 한다. 우려도 많았다. 환경단체들은 무분별한 댐 건설이 홍수 등 재해의 위험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생태계를 파괴해 주민 생존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이는 현실이 됐다. 2016년 12월 남동부 세콩주, 지난해 9월 북동부 시엥쿠앙주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사고가 났다.

아직 정확한 피해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고 원인도 규명되지 않았다. SK건설은 사고에 일부라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파악될 경우 엄청난 규모의 피해보상을 해야 할 지 모른다. 회사 신뢰도가 떨어져 해외 수주가 지금보다 어려워질 가능성도 높다. 라오스 정부 역시 넓은 피해지역을 복구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죄 없이 숨진 희생자들의 목숨은 되살릴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가 한 그대로 되돌려준다. 미소는 미소로, 욕설은 욕설로 돌아온다. 부실 건축물은 무너지고 인간에게 착취를 당한 자연은 자연재해를 안겨준다. 올여름의 폭염이 우리가 그동안 에너지를 함부로 써온 대가일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찜통 같은 이 여름, 인간의 탐욕과 비리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농후한 제2, 제3의 참사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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