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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우 고객님께서 주문하신 물건이 분실되었습니다. 배달 드론의 신호가 끊긴 것으로 보아 오작동으로 추정됩니다. 동일 제품이 자동으로 재주문되었습니다. 추가 비용은 일절 발생하지 않습니다. 배달에 2일이 소모될 예정입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정우는 스마트폰 화면에 뜬 메시지를 읽고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그가 주문한 물건은 유기농 채소와 닭고기였다. 다른 물건이라면 신경 쓰지 않고 이틀을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 먹을 것이 똑 떨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신용카드 기한이 사흘 전에 만료되고, 술을 잔뜩 마셔 하루를 그냥 보낸 탓에 뒤늦게 연장하고 보니 냉장고가 텅 비어 있었다. 부랴부랴 주문했는데 이제는 배달 드론마저 행방불명이라니. 가만히 있으면 꼼짝없이 이틀을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외출’을 하든지.

배가 고프다못해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택배사에 요청 메시지를 보내자 스마트폰의 지도에 드론이 마지막으로 신호를 보낸 장소가 떠올랐다. 정우는 투덜거리면서 장비를 챙겼다. 하얀 압축 필터 한 쌍을 콧구멍에 끼우고, 안구 건조를 방지하는 고글을 쓰고, 군용 방독면보다는 조금 가벼운 방진 마스크를 썼다. 미세먼지가 피부에 들러붙지 않도록 팔이 긴 윗도리와 비닐 장갑을 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정우는 집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빈틈없이 누렇고 탁했다. 곳곳에 검은 녹색이 감돌았다. 정우를 제외하면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은 관용 전기차 서너 대뿐이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장비를 잔뜩 걸치면 우선 멀리 걷기가 힘들었다. 촘촘한 이중 필터와 마스크 때문에 호흡도 편하지 않았다. 노인이나 아이들은 아예 외출할 엄두를 내지 않았다. 바깥 거리에 사람이 사라진 대신 하늘에는 물류 전반을 책임지는 온갖 드론이 그득했다.

정우는 이십 분쯤 걷다가 발을 멈췄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고글에 덮인 먼지를 쓸어내고는 스마트폰의 지도를 보았다. 모퉁이를 두 번 돌자 추락한 드론 두 대가 보였다. 그 옆에 한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드론을 살피고 있었다. 정우와 비슷한 처지인 게 분명했다. 정우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수화로 말을 걸었다. 마스크에 무선 마이크가 있었지만 번거롭게 상대방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콧구멍이 막힌 채 통화를 하느니 작년부터 많은 사람들이 배우기 시작한 수화가 훨씬 편했다.

- 그쪽도 택배 드론이 추락했나봐요?

- 우리 드론끼리 충돌한 것 같아요.

- 어느 것인지 확인하셨어요?

- 이제 막 지문을 찍어보려던 참이에요.

하지만 두 사람은 망가진 지문 인식 패널을 보고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결국 끙끙거리며 적재상자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고 나서야 제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수화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다음 헤어졌다.

그 순간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경고음을 울렸다.

-서울에 고밀도 미세먼지 강습 예상. 최소 지속 시간 30분 예상. 외출자들은 속히 실내로 대피 요망.

그와 동시에 거센 바람이 정우의 오른쪽 어깨를 두드렸다. 가시거리는 더욱 짧아졌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정우는 상체와 얼굴을 숙여 땅을 보면서,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공기청정기가 만들어 내는 집안의 공기가 너무나 그리웠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정우의 등과 오른쪽 어깨에 누런 먼지가 빠른 속도로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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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인 미국 건강영향평가협회(US Health Effects Institute·HEI)는 미세먼지와 대기 오염이 전 세계 사람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 여기서 말하는 오염된 공기란 WHO에서 정한 공기 수준 기준치보다 미세입자가 더 많이 포함된 공기를 가리킨다. 오염도가 가장 높은 공기와 가장 낮은 공기의 차이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또한 2016년에 미세먼지가 직간접적 원인이 되어 사망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6000만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발작, 심장마비, 폐암 등 다양하다.

중국이 쓰레기 소각 설비를 자국 동부 연안, 즉 우리나라 서해 방향에 대거 건설한다는 소식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는 요즘이다. 이 글에서 인용한 연구 결과가 절대적인 기준일 수는 없겠지만, 사망자 수를 놓고 볼 때 공기 오염은 흡연, 식습관, 고혈압의 뒤를 이어 건강을 위협하는 4대 원인에 진입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층은 아이들일 것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노출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자연적으로 가라앉고 사라질 때는 지났다. 전 세계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공기 오염으로 인한 사망은 무차별적으로 우리를 덮치고 가장 약한 사람부터 쓰러뜨리고 말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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