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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는 다소 긴 길을 걸어오느라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는 기자를 보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기자는 불만을 제대로 숨기지 못해 얼굴로 드러내고 있었다. 요즘은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대상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자들은 대개 인터뷰 드론이나 화상통화를 이용했다. 하지만 정호는 청전시(市) 밖에서 절대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기자들은 굳이 차를 몰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인사말이 끝나자 곧장 질문을 던졌다.

“이번 인터뷰는 청전시를 백과사전식으로 소개하기보다 1대 시장으로 당선된 분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싶어서 준비해봤습니다. 시장님께서는 청전특화도시를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저는 청전시가 다른 도시에 비해 더 특별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양성의 일면을 강조하는 특화도시들이 만들어진 건 이미 오래됐잖습니까. 그 가운데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지나친 단순화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청전시를 ‘전통을 고집하는 옛 도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부적응자나 촌스러운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도시라고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정호는 여유있는 자세로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스물한 개 특화도시 전부를 한꺼번에 비난하시는 겁니다. 저로서는 그분들이 오히려 시대를 핑계로 삼는 차별주의자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시장님께서는 청전시가 옛 삶을 고수하는 특화도시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는 오히려 백과사전식 정의가 도움이 될 겁니다. 사전에 따르면 우리 시는 모든 형태의 인공지능 사용을 금하는 도시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 시는 시 경계와 모든 유선 인터넷망에 안티 AI 방화벽을 설치해두고 있죠. 첨단 기술입니다. 그것만 봐도 우리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공중화장실 세면대에도 인공지능이 들어가 있는 시대 아닙니까. 물론 청전시 화장실은 다릅니다만. 어쨌든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는 건 곧 21세기 말의 시대적 정의입니다.”

“그런 시대라고 해도 타인에게 특정 인생관을 강요하는 게 폭력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지요?”

기자는 다소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저를 비롯한 청전시 시민들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인공지능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흔히 인공지능을 똑똑한 부하나 집사 정도로 의인화하고 있잖습니까? 하지만 사물에 이름을 붙인다고 인격이 부여되진 않습니다. 지금 사회 전반에 퍼진 인공지능은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전문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그 수집은 전방위적으로,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이뤄집니다. 청전시는 그걸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도시입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게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모인 도시죠. 물론 정말로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시장님과 청전시민들은 자주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정의하는 것이, 현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수많은 편리함을 모조리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는 뜻인가요?”

“예, 우리는 바로 그 점이야말로 21세기 말에도 남아 있어야 할 인생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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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미래를 바꿀 만큼 잠재력을 가진 사상, 이론, 기술이 등장하면 다양한 반응이 나오게 마련이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가장 극적인 두 가지 반응이 도드라지는 경우가 많다. 극적인 두 가지 반응이란 열렬한 찬양과 극단적인 거부다.

이런 패턴은 인공지능에 대한 태도에서도 반복된다. 사람이 당면한 문제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합리적으로 해결해줄 거란 기대는 엄청나다.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자율주행 자동차가 미친 듯이 거리를 질주할 거란 공포심은 그 반대편에 있는 극단적인 반응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반응은 어느 쪽이든 피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인공지능의 뛰어난 학습능력이 어느 정도 알려진 지금, 숨을 고르고 차분히 생각하게 만드는 소식이 하나둘 들려온다. 인종차별적인 판단 기준을 학습한 인공지능 이야기나, 암 진단에 IBM 왓슨을 이용했던 의사들이 뛰어난 기능에도 불구하고 왓슨과 결별한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기술적 낙관론을 내세우던 페이스북 서비스에는 꽤 커다란 허점이 숨어 있기도 했다.

우리는 기술이 세계를 새로 정의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기술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거나 거부하면 자칫 그 세계의 참모습을 가릴 수도 있다. 설사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의 작동방식을 이해할 순 없더라도 그 한계와 의미를 끊임없이 알리는 노력은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변화를 제대로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권리가 정치, 경제, 의학뿐 아니라 과학과 기술에서도 지켜져야 한다는 점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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