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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31일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연루 인사들에 대한 고발·수사의뢰 여부는 법원 안팎 의견을 종합한 뒤 최종 결정하겠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공식 사과한 것은 당연한 일이나,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조치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가 나온 지 이미 엿새가 지났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사법농단 앞에서 시민의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언제까지 의견 수렴만 할 것인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은 담화문에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심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의 질책을 사법부 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삼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징계를 신속히 진행할 것이며, 조사자료 중 의혹 해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의 공개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대법원이 형사조치를 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및 각계 의견을 종합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자 한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조직을 인적·물적으로 분리하고 법원행정처 상근 법관들을 사법행정 전문인력으로 대체하는 등의 제도적 쇄신 방안도 제시했다.

담화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법원의 재판에는 누구도 부정한 방법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면, 사법부는 더 이상 존립의 근거가 없고 미래도 없다. 사법부 구성원 모두와 함께 그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 지금 그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김 대법원장이 할 일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을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를 대법원 청사 외부로 이전한다는 약속 정도로 시민의 충격과 분노를 달랠 수는 없다. 관련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용하고 확실한 재발방지책이다. 심판하던 이들이 심판받는 처지가 될 때에야 연루 인사들은 물론 모든 법관들이 법의 준엄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심판대에 세우는 주권자를 진정으로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대법원장의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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