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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 해에 우리는 최초로 외계 지적 생명체와 만났다. 물론 이 ‘최초’를 맞은 해는 아주 많다. 과학소설(SF)에 등장하는 만남이기 때문이다. 아서 클라크의 소설 <라마와의 랑데부>에서는 2130년대에 지적 존재의 흔적과 만나고,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1999년에 만났다. 매리 러셀의 소설 <스패로>에서는 2019년에 우주의 신호를 포착한다. 많은 SF가 외계 지적 생명체 또는 그들이 남긴 흔적과의 조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전체 SF 작품의 수보다 조금 적은 수의 ‘첫 만남’이 평행우주 속에 존재한다.

그 가운데 굳이 2030년을 언급하는 이유는, 유독 독특하기 때문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영국 작가 제임스 호건의 소설 <가니메데의 친절한 거인> 속 외계 생명체는 2500만년 전에 이미 광속 비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문명을 발달시켰지만, 문제가 생겨 우주를 떠돌다 2030년의 태양계에 도착했다. 작품 속에서 인류는 목성 위성 가니메데까지 정기 여객 우주선을 보낼 정도로 기술 문명이 발달했는데, 여기에서 불시착한 외계인 ‘가니메데인’들과 처음 만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별로 인상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흔한 SF 장면 같다. 인상적인 것은 다음 대목이다. 막대한 기술력을 지니고 덩치도 인류보다 두세 배는 커 보이는 미지의 외계인과 갑자기 만나게 됐다. 인류는 순간 어떤 태도를 취할까? 특히나 ‘그들’이 맹렬한 속도로 접근하고 있음을 인지했을 때 말이다. 작품에서 인류는 그 의도가 공격일 수 있다고 판단했고 반면 우리 쪽에는 사용할 수 있는 방어 무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패닉에 빠진 인류가 가장 먼저 내린 결정은 일단 중간에 무엇이라도 충돌시켜 그들의 진로를 막자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주변 위성을 긴급히 불러 모았다. 몸으로 부딪쳐서라도 싸우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그런 인류를 맞은 것은 공격 의사라는 개념조차 없는, 한없이 평화롭고 협력적인 거인 외계인이었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우월하고 낯선 존재를 마주했을 때 일단 그들이 공격하리라고 가정하는 건 인류가 역사를 통해 체득한 반면교사의 교훈 때문이다. 한 무리의 인류가 미지의 땅을 밟으며 처음으로 낯선 존재 무리와 만났을 때 행했던 폭력 말이다. 예를 들어, 1만2000년 전 빙하기 때 유라시아에서 아메리카로 대륙을 건너가 그곳에서 독자적인 문명을 건설했던 아메리카인들과, 뒤늦게 이들을 찾아간 근대 유럽인 사이의 만남을 보자. 근대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인들을 평화롭게 대하지 않았다. 우월한 기술과 무기를 갖춘 그들은 원주민의 삶과 문명을 철저히 파괴하고 약탈했다. 이때만 유별나게 벌어진 일도 아니다. 이와 비슷하게 폭력적인 점령은 세계 곳곳에서 주체와 대상만 바뀐 채 역사시대 내내 반복됐다. 이런 경험 때문일까. 역사시대 이전에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했던 여러 친척 인류와의 만남을 상상한 대다수 문헌들도 한동안 둘 사이에 경쟁과 폭력이 있었다고 묘사하곤 했다.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에렉투스 등을 우리가 싸워 물리쳤다는 식이다(지금은 이런 관점이 많이 사라졌다. 평화로운 공존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싸우진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대상을 자연으로 바꾸면 사례는 더욱 늘어난다. 빙하기 때 낮아진 해수면 때문에 시베리아와 아메리카가 연결되면서 드넓게 열렸던 대륙에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 적응해 진화한 털매머드는 때마침 이곳으로 확산한 호모 사피엔스 집단의 공격과 급격히 따뜻해진 기후의 영향으로 단기간에 멸종했다. 한동안 학계는 인간과 기후 중 어느 요인이 더 심각한 멸종 원인이었는지를 따졌다. 하지만 유라시아 곳곳에서 털매머드 수십마리의 상아와 뼈로 만든 주거지가 발견되면서, 이 거대한 포유류의 씨를 말릴 만큼 사냥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털매머드만이 아니다. 북미 대륙의 나그네비둘기, 인도양 모리셔스섬의 도도새 등이 인류에 의해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이런 행위의 이면에는 우리 인류가 다른 존재에 비해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자각이 있었다. 우월하기에 그렇지 않은 존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인식도 한쪽에 있었다. 이 자각은 인류가 태어난 이래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인류는 지구 위 다른 어떤 존재보다 지적으로 뛰어났고, 이를 뒤집을 수 있는 존재는 친척 인류를 포함해 없었다. 인류는 인간 족(호미닌) 전체에서 유일한 생존자이자 승리자였다.

2030년, 상황이 바뀌었다. 만약 인류보다 우월한 존재가 등장한다면 어떨까? 예를 들면 SF에서처럼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수준 높은 문명을 일군 외계 지적 생명체가 찾아온다면? 이 질문이 허황되게 들린다면 질문을 바꾸자. 만약 인류보다 뛰어난 강한 인공지능이나 초지능이 등장한다면?

이 상황에서 지적으로 우월한 우리와 열등한 그들이라는 구도는 역전된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인류는, 우리보다 우월한 지적 능력을 갖춘 그들이 공격적이라서 우리를 약탈하고 지배할 것이라고 우선 가정할 수밖에 없다. 그게 역사를 통해 귀납적으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다. 작년 인공지능 알파고가 바둑의 인간 챔피언을 눌렀을 때 쏟아져 나온 반응 중 상당수는 공포였다. 직업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공포부터, 초지능이 인류에 적대감을 갖고 행동할지 모른다는 공포까지 다양했다. 이 공포의 근원이 궁금했는데, 참고문헌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역사였다.

다시 2030년으로 돌아와 또 다른 사고 실험을 해보자. 이 해에 처음으로 어느 외계 행성에서 지적 생명체와 만났다고 가정하자. 예상치 못한 만남이다. 그런데 이들의 기술 문명이 아직 우리의 석기시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지구에서 해왔던 것처럼 그들을 밀어내고 사라지게 할까? 지배하고 그들이 사는 지역을 식민지화할까? 혹시 보다 우월한 지적 존재로서 너그럽고 평화로우며 협력적으로 그들을 대하는 선택지는 없을까? 가상의 미래 2030년이지만,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 할지 모른다. 역사는 자주 되풀이되므로.

<윤신영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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