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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문을 열기 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일수 전단지를 치우는 일이다. 골목에서 식당 입구까지 지르밟고 가라는 꽃잎처럼 뿌려져 있기도 하고, 열쇠구멍 앞을 딱 가로막고 있기도 하고, 문틈 사이에 끼어 있다가 팔랑팔랑 떨어져 내리기도 한다. 명함 크기나 얄팍한 메모지 형태의 전단지. 행복한 돈 해피일수부터, 큰돈 작은돈 빠른돈, 친절한 아주머니가 직접 달려가는 아주머니 일수까지. 거르지 않고 매일 다양하게 그것들은 도착해 있다. 오늘 하루 안녕한 영업을 위해 지참해야 할 부적이라도 되듯 당당하고 불온하게. 쓰레기일 뿐이다.

자영업자우대, 업소종사자가능, 신용불량자가능, 방보증대납가능, 목돈을 쉽게 빌려 쓰고 푼돈으로 상환, 무담보무보증. 아, 자영업자인 나는 어쨌거나 우대받는 존재, 특별히 선택받을 자다.

전화벨이 울린다. 예약전화가 아니다. 연남동 신생 맛집 탑 파이브로 선정되었단다. 한 달 동안 식당 리뷰들을 종합한 결과란다. 친절한 포털 사이트. 그런 것까지 계산해주시고. 이제부터 연남동 맛집 검색어를 치면 당신의 식당 이름이 나올 것이다. 축하한다. 리뷰가 아주 좋다. 어쩐지 좀 으쓱해진다. 포털에서도 알아주는 맛집이라니. 주메뉴와 가격대 오픈시간 등을 확인한다. 인근의 환경 주소 연락처 사업자번호 등등. 그리고 이제 전담자가 생길 거란다. 포털사이트에 노출되는 정보를 꾸준히 관리해 줄 당신만의 담당자. 그게 다 리뷰가 좋은 신생 맛집 5위 안에 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계좌번호를 묻는다. 왜? 한 달에 대략 오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니까. 파워링크 비용에 비하면 아주 저렴한 거다. 일년 혹은 이년 약정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이런 건 꼭 마지막에 얘기한다. 안 하겠습니다. 전담자가 생긴다니까? 그냥 제가 저를 전담하겠습니다.

아, 나는 선택받은 존재, 그러나 그 특별한 기회를 놓친 어리석은 자다.

전화는 계속해서 온다. 웬만한 곳이면 빼놓지 않고 나 혹은 이 가게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도제공 업체, 가맹된 카드사, 앱 개발자, 은행 등등. 맛집을 알려주는 앱이 이렇게나 많은지 몰랐다. 동네별로 종목별로 가격별로 용도별로 검색의 폭을 넓히거나 좁힐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참고로 식당을 선택하고 예약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광고지면에 식당소개를 해주거나, 지도에 주변 맛집으로 등록해주거나, 앱에서 직접 온라인예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대신 나는 손님들에게 카드할인을 해주거나, 적립금이나 예약금을 대신 지불해주면 된다. 효과에 비하면 대단히 소소한 비용 아닌가. 돈을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고객들에게 혜택을 나누라는 거다. 그러니 우리의 혜택을 함께 받으며 성장하시라.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업마인드가 없어서야. 고객들로 하여금 그곳에 조금 더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니까, 그깟 적립금이 뭐라고. 그냥 우리의 고객들을 불편하게 하겠습니다.

아, 나는 또다시 좋은 기회를 놓친, 쪼잔한 업주로 전락한다.

이번엔 파워블로거다. 직접 연락을 해오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 소개를 해주기도 한다. 리뷰를 멋지게 올려주는 데 들어가는 한 달 비용은 대략 이십만원선.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가 몇 개인데 시간차를 두고 다른 내용으로 올려준다. 석 달 정도 하면 승부가 난다. 여러 식당이 함께하면 할인도 해준다. 실제로 덕분에 매출이 서너 배 올랐다는 업주가 직접 데려온 사람이니 믿을 만하고 해볼 만하다. 물론 아무 곳이나 막 받지는 않는다. 왜냐. 파워블로거의 수준과 품위가 있으니까. 파워를 유지하려면 그 정도의 안목은 있어야 한다. 그 안목으로 볼 때 이곳은 조금만 손대면 곧 대박이 날 것이다.

안 하겠습니다. 대박이 나면 내 몸은 또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내 품위는 내가 지키겠습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죄송. 아, 나는 대박의 기회를 놓친, 안목 없는 자로 남는다.

다양한 충고들과 조언들이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현재까지. 업계 선배로부터 납품업체로부터 친구로부터 손님으로부터 방문객으로부터. 어떤 냉장고와 어떤 오븐을 사면 좋을지에서부터, 인테리어를 비롯해 메뉴구성과 가격을 지나, 전체적인 콘셉트와 손님접대의 방법까지. 이러면 되고 저러면 안되고. 전문적인 조언도 있고 막연한 풍문도 있고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업장의 모습도 있다. 물론 그 조언으로 여기까지 왔다. 때론 받아들이고 때론 참고만 하면서. 하지만 이런 충고도 있다. 장사가 잘되려면 내가 좀 더 방긋방긋 웃어야 한다는 따위의. 주방은 월급 셰프에게 맡기고 나는 홀에서 고객관리에 전념해야 한다는 등의. 우리 남정네들은 친절한 여자를 좋아하니까. 남정네들 좋으라고 불판 앞에서 땀 찔찔 흘리고 음식하는 거 아니거든요. 다시 안 오셔도 됩니다.

아, 차라리 나는 무뚝뚝한 욕쟁이 식당 할머니가 되기로 한다.

설마 일수를 찍어야 할 정도까지 가겠어? 설마 그런 영혼 없는 블로거질에 가담을 하겠어? 무뚝뚝한 얼굴에 갑자기 방긋한 미소가 생기겠어?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게 사람 일이 아닌가. 손을 잡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통장에 든 잔액을 끌어모아 겨우 월세를 내고 물품대금을 지급할 때. 빈 테이블을 바라보며 휴가철이어서 그런가 날씨가 궂어서 그런가 월초라서 그런가, 외부요인을 찾고 있을 때. 뭐라도 해봐야지 이렇게 손 놓고 있어야 되겠어? 이 고비만 넘기고 나면, 싶을 때. 저 한 장의 전단지와 한 통의 전화와 한마디의 조언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반드시 잡아야 할 꽤 괜찮은 기회.

식당 문을 열며 일수 전단지를 집어들 때마다, 주위를 한번 휙 둘러보게 된다. 전단지에 새겨진 단어들이 친절한 인사로 여겨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악수하듯 오래 손에 붙들고 있다가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기회와 선택에 대해 생각한다. 기회와 선택은 대단한 성공이나 출세나 특별한 변화의 순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궁지에 몰렸을 때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와 선택. 그건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니까.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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