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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에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장착할 것이다. 위성 안내를 받는 각 자동차는 운전자 능력에 맞춘 실수 감지 장치와 추돌 방지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어떤 길은 막히므로 피해야 하고 어떤 길로 가야 빠른지 알려준다. (…) 도시 진입로에 가상 톨게이트와 전자 칩 카드를 만들어 주행거리를 표시하고 해당 금액이 은행 계좌에서 이체되도록 할 것이다. 도시에서 차량은 시민의 공동 재산이 되어 한 사람이 쓰고 난 후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도록 할 것이다. (…) 전기 엔진을 사용하면 내연기관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전기 엔진은 개발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영원히 개발 못할지도 모른다. (…) 앞으로 전 세계 모든 도시에서 자동차 운행을 금지시킬 수밖에 없다. 운행 금지 결정은 도시와 교통의 모든 관계를 뒤흔들어 놓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원격 근무와 정보 경제 발달을 촉진할 것이다.”

이는 1998년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펴낸 <21세기 사전> 중 ‘자동차’ 항목의 일부다. 한국에서도 내비게이션과 하이패스 시스템은 운전자가 자동차에 장착하는 필수 옵션이 된 지 오래다. 우버로 대표되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 시장 규모는 확대일로에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해 당사자의 갈등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아탈리의 비관적 예측과 달리 2017년 기준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54% 증가한 110만대로 총 보유량은 300만대를 넘어섰고, 한국도 2016년 전기차 보급률이 3.8%를 기록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탈리가 자동차 항목의 마지막 문장에 제시한 자동차 운행 금지 결정이라는 전망은 급진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예측일까? 2009년 스페인 갈리시아주 폰테베드라는 자동차 시내 통행을 전면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시내 도로는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이 사라지고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2013년 이후 대기 오염은 61% 감소했다. 2009년 이래로 단 한 명의 교통사고 사망자도 없었다. 시내를 여행하는 사람의 70%는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게 됐다. 자동차 통행 금지 결정 이후로 교통 체증과 대기 오염이 줄어들자 1만2000명의 시민이 도심으로 이사해 살게 됐다. 주차공간을 찾느라 도로를 배회하는 운전이 교통 체증의 주범이었으므로 도시 외곽에 지하주차장을 만들어 도로 주차를 대신하였다.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린 시장은 내리 4번 연속 시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폰테베드라 시내 통행 금지 결정 이후 외곽의 교통 상황은 악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폰테베드라가 인구 8만명에 불과한 소도시라 자동차 통행 금지라는 과격한 정책이 실행될 수 있지 않았을까? 메르세데스 벤츠와 포르쉐가 탄생한 독일 슈투트가르트는 2017년부터 대기오염이 높은 날 디젤 엔진 배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차량은 시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정책을 시작했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 3월에 발표한 문서에 따르면 전 세계 13개 주요 도시가 자동차 퇴출 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는 2019년까지 도심에서 모든 자동차 통행을 완전히 금지할 계획이다. 스페인 마드리드도 2020년까지 도심 2㎢ 면적을 차량 통행 금지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독일 함부르크는 2035년까지 시내 40% 면적을 공원과 놀이터 등 녹지로 채워 자동차가 다니기 어렵게 만들 계획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올해 말까지 자전거 고속도로를 도시 외곽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프랑스 파리는 2020년까지 디젤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고 자전거도로를 2배로 늘릴 예정이다. 영국 런던도 2020년까지 디젤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혼잡통행료를 무겁게 부과할 계획이다. 벨기에 브뤼셀은 전 유럽에서 가장 넓은 차 없는 지역을 지정해 보행자 편의를 높일 예정이다. 멕시코시티와 콜롬비아 보고타도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도심에서 퇴출시키는 정책을 시행 중이고 확대할 계획이다.

<하늘에서 본 지구>와 <하늘에서 본 한국>을 펴낸 세계적 항공 사진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2006년 전시회를 위해 내한했을 때 시사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은 완전히 차량으로 마비된 인상이고, 한 사람이 SUV 차량을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12년이나 지난 2018년 연초 서울시는 미세먼지가 심할 때 출퇴근 시간대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추진하다 중단하고 자발적으로 차량운행 자제를 유도하는 소극적 대책으로 전환한 바 있다. 2016년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가 불거진 한참 뒤인 지난 4월에야 환경부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디젤차 판매 축소를 유도하여 ‘클린 디젤’ 정책의 폐기를 선언했다. 오락가락하는 디젤 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자동차업계가 부담하게 된 셈이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는 세계 인구의 10명 중 9명이 대기오염에 영향을 받고 있고 매년 600만명 이상이 사망한다고 추산했다. 지난해 서울환경연합이 수도권 거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세먼지 발생 원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중국 등 주변국 영향’을 꼽는 비율이 45%로 가장 많았지만, 2016년 환경부가 미국 항공우주국과 공동으로 국내 대기질을 조사한 결과는 다르다. 한국 내 초미세먼지의 52%는 국내에서 생성된 것이고, 나머지 34%는 중국 내륙에서, 9%는 북한에서 생겨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감축은 자동차 통행을 줄이고 차량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한 다음 중국 탓을 하는 것이 순리다. 1886년 카를 벤츠는 “말 없이 달리는 마차를 만들겠다”며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2086년 자동차가 퇴출된 미래 서울시에 들른 고틀립 다임러는 청계천 도로를 순환하는 자동차에 관광객으로 올라타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자동차는 외형만 과거의 자동차일 뿐 내연기관이 아니라 전기모터로 구동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가 퇴출된 미래 도시 시민이 잃을 것이라고는 미세먼지요, 얻을 것은 맑은 공기와 건강이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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