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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전쟁은 스파르타 왕비인 헬레네를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데려가면서 시작된다.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 왕은 함대를 꾸리고 사랑의 도피행각에 나선 왕비를 찾아 트로이로 출정한다. 전쟁은 10여년간 계속됐고, 영웅들의 무덤이 되었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절친인 파트로클로스가 전사하자 칼을 들었다. 분노한 아킬레우스의 창에 파리스의 형 헥토르 왕자가 숨진다. 아킬레우스도 파리스에 의해 발목에 독화살을 맞으면서 같은 운명이 된다. 그리고 파리스마저도 히드라독이 묻은 화살에 죽는다.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헬레네가 없었다면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로 시작하는 최초의 서사시 ‘일리아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헬레네는 제우스와 스파르타 왕비 레다의 딸이다. 제우스는 그리스신화 최고의 바람둥이다. 변신에도 능해 소나 뱀, 황금빛 소나기로 나타나 상대방에게 접근했다. 유일하게 제우스에게서 벗어난 여자는 아르고스의 님프인 시노페밖에 없다. 제우스가 구애하자 시노페는 제우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했다. 그 소원은 ‘평생 처녀로 남게 해주세요’였다. 제우스는 그녀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제우스 엽색행각의 상대방 가운데 스파르타 왕비 레다도 있다. 그때 제우스는 백조로 변신해 레다에게 접근했다. 레다는 네명의 쌍둥이를 낳았고 이들 쌍둥이 가운데 한명이 헬레네다.
19일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에서 부유층 주택의 침실장식으로 보이는 프레스코화가 발견됐다. 그리스신화에서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스파르타 왕비 레다에게 안기는 장면이다. 이 벽화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잿더미에 묻힌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저택의 주인이 부유한 상인으로, 신화를 주제로 한 벽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문화적인 소양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때론 비극으로 생명을 얻는 경우가 있다. 제우스와 레다를 그린 프레스코화는 화산폭발이라는, 신화보다 더 신화 같은 재난에서 살아남아 우리에게 왔다. 프레스코화 속 레다의 시선은 관객을 향하고 있다. 레다는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다. ‘그때 나는 폼페이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을 보았다’고.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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