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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안, 검찰개혁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이후에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여전히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 몇 자리를 더 얻겠다고, 끊임없이 개혁안을 후퇴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의 타협 가능성에 미련을 두고 있다.  

그러나 타협이 잘되면 개혁과는 거리가 먼 ‘누더기 입법’이 될 것이고, 타협이 안되면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칠 뿐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자유한국당과 타협을 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국회 의석을 배분한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준연동형’으로 축소시킨 장본인도 민주당이다. 정당득표율의 50%만큼만 의석을 우선배분하는 ‘준연동형’은 이미 많이 후퇴된 안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40% 연동형 등 더 후퇴된 제안들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런 장면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본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기회만 있으면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3년 12월17일엔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4년 실시될 17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은 당시 한나라당에 철저히 무시당했다. 그래서 2004년 총선 전에 큰 틀의 선거제도 개혁을 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5년 7월엔 한나라당에 ‘선거제도 개혁만 한다면 대연정도 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에게 선거제도 개혁은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간담회에서 본인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선거제도 개혁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되니까,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꼭 선거제도는 좀 고치고 싶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이것은 꼭 하고 싶다. 그래서 이 대연정의 제안은 소위 말하는 반대급부의 내용이고, 진정으로 제안한 것은 선거제도 고치자는 것입니다.”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내놓더라도 선거제도를 꼭 바꾸고 싶다는 노무현의 꿈은 정치다운 정치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그 염원은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이제 기회가 왔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해도 민주당의 의지만 있다면,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공수처법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는 왜 잔머리를 쓰는가? 내년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데, 비례대표 몇 자리를 더 얻겠다고 개혁안을 후퇴시키려 하는가? 

‘합의 처리가 관행’이니 하는 얘기는 하지 말라. 아무런 근거 없는 관행보다 중요한 것은 헌법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49조는 “국회는 헌법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라고 못 박고 있다.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니까, 합의가 필요하다는 엉터리 같은 얘기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야구게임의 룰을 야구선수들끼리 합의해서 정하는가? 사실 국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의 룰은 국회의원들끼리 정할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기구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권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권고했다. 이런 권고를 따르는 것이 맞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은 국민들을 속이려는 것이다. 결국에는 비례대표 몇 자리를 더 얻는 것이 목표가 아닌가? 그러나 ‘연동형’ 개념이 도입되면, 정당득표를 많이 하면 의석을 더 얻을 수 있다. 민주당도 내년 총선에서 정당득표율을 더 끌어올리면, 비례대표 의석을 더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정정당당한 것이지, 선거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꼼수’로 의석을 더 얻겠다는 것이 노무현 정신을 따른다는 정당이 할 일인가?

9일에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된다는 것도 시기를 미룰 핑계가 될 수 없다. 이미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확고하게 밝혔다. 원내대표 후보자 가운데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찬성한다는 후보가 없다. 그렇다면 누가 되든, 개혁에 반대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는 역사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해야 한다. 문희상 의장은 역사적 책임감을 갖고 9일 본회의에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유치원3법의 순으로 법안을 상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면, 11일 본회의에서 선거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개혁입법을 완성시켜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는 어차피 며칠을 가지 못할 것이다. 지역구를 챙겨야 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언제까지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겠는가?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통과되면, 자유한국당은 저절로 흩어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로지 용기와 결단, 책임의식뿐이다. 제발 노무현 대통령의 꿈을 기억하기 바란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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