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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한 시국이다. 자칫 대한민국의 역사가 다시 후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촛불의 힘으로 등장한 정권은 지지율이 떨어졌고, 퇴행적 수구기득권 세력은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큰 제도개혁은 여태 이뤄낸 게 없다. 개헌은 작년에 무산됐고, 마지막 남은 게 지금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려져 있는 검찰개혁(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과 선거제도 개혁(만 18세 선거권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지금은 이 두 가지 입법을 성사시키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이마저 무산된다면, 촛불은 아무런 제도개혁의 성과를 남기지 못한 셈이 된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먼저 할 것인지는 의미 없는 얘기다. 패스트트랙이라는 절차에 올려질 때부터 검찰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은 한배를 탔다.

그런데 두 가지를 모두 성사시킬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과의 3+3 협상이다. 이를 보면, 집권여당이 개혁을 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를 묻게 된다. 

지금 한국당은 공수처법과 선거제도 개혁 모두에 명확히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온갖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 이런 한국당과 협상을 해서 무슨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한국당의 ‘시간끌기’ 전략에 넘어가는 것일 뿐이다. 

지금 집권여당이 해야 할 일은 개혁을 하겠다는 세력과 협력해 국회 본회의 통과에 필요한 과반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합의했던 정당들과의 협력체계를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 지난 10월23일 이들 정당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기구인 정치개혁공동행동 및 원외정당들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패스트트랙을 성사시킬 것을 결의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가칭)대안신당의 유성엽 대표도 참석했다. 바른미래당의 경우에도 유승민 의원, 안철수 전 대표 쪽 의원들을 제외하면 협력이 가능한 상황이다. 집권여당이 의지를 갖고 이들과 협력하면 160석 남짓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면 검찰개혁, 선거제도 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킬 수 있다.

다만 법안 통과를 위해선 두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법안들을 수정·보완해야 한다. 이 부분은 개혁을 하고자 하는 정당,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력해 진행하면 된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제도 개혁안은 국회의원 지역구를 현행 253개에서 225개로 줄이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지역구는 250개 정도로 하고, 전체 의석을 10% 정도 늘리는 게 현실적 개혁안이다. 10%의 의석 증대는 작년 12월15일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서명한 합의서에도 ‘검토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던 부분이다. 둘째, 의석 증대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해선 내년부터 국회의원 연봉을 삭감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보좌진 규모 축소, 각종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에 대해서도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개혁을 하고자 하는 쪽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최근 한국당 측이 퍼뜨리는 가짜뉴스를 보면, 민망할 정도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반부패수사기구는 영국에도 있다. 영국의 중대범죄수사청(Serious Fraud Office)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나라가 반부패를 위한 기구를 확대하는 추세다. 유엔 반부패협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약 등이 체결되면서 전 세계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어떻게든 부패를 없애야 한다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가 심하고, 검찰·국회 등 부패 감시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공수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게다가 공수처장 임명 절차는 검찰총장 임명 절차보다 훨씬 까다롭다. 7명의 공수처장 추천위원 중 6명이 찬성해야만 추천이 가능하다. 야당 몫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면 추천을 하지 못한다. 변호사들이 직선으로 선출하는 대한변협 회장도 추천위원인데, 이 정도 추천 절차의 독립성은 확보됐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국회 동의 절차를 추가로 거치게 해도 좋다. 어쨌든 공수처는 지금의 검찰보다는 훨씬 독립성이 확보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이런 공수처를 두고, 장기집권을 위한 도구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가짜뉴스다. 

한국당 측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해서도 ‘입법부 장악 의도’라고 하는데, 한심한 얘기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자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이것이 입법부 장악 의도라면 한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낮은 정당득표율을 얻겠다고 스스로 결심했다는 얘기인가?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정당득표율을 높이면 자기 정당의 의석이 늘어날 텐데, 제1야당이 가짜뉴스나 퍼뜨리고 있다. 

문제는 이런 한국당과 협상을 하고 있는 집권여당이다. 지금이 합의처리 운운할 한가한 때인가? 역사의 열차가 앞으로 나아가느냐 뒷걸음치느냐의 중요한 순간이다. 집권여당이라면 책임의식을 갖고 어떻게든 일을 되게 만들어야 할 때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개혁, 검찰개혁은 매번 무산되기만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를 잊었는가? 그런데 지금 그 기회가 왔다. 여기에서 머뭇거린다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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