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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인 진술조서 작성이 끝났다. 수사관은 담당검사를 거쳐 부장검사까지 조서를 검토할 것이니 대기실에서 기다려달라 했다. 얼마 후 조서 검토가 끝났다고 해서 검사실로 갔다. 담당검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 마지막쯤에 이런 말을 했다. “보십시오. 우리 방에 저하고 수사관 2명밖에 없지 않습니까?” 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검사는 수사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순진했다. 

위의 대화는 작년 11월20일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의 담당검사실에서 있었던 것이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남부지검의 특수부로 불리는 부서이다. 일반 사건보다는 국회의원 등 유력인사들이 연루된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곳이다.

당시에 내가 고발인으로 진술하러 간 사건도 국회의원들을 고발한 사건이었다.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와 뉴스타파의 오랜 협업으로 밝혀낸 비리 혐의들이었다. 

국회 사무처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행정소송까지 해서 받은 문서들이 증거 서류였다. 그리고 뉴스타파의 보강 취재를 통해서 사실로 확인된 것들만 고발했다. 관련자들이 사실관계를 인정한 사건도 있었다. 이런 증거들을 바탕으로 11명의 국회의원을 고발 및 수사의뢰했다. 준비단계까지 하면 2년의 노력을 들였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은 보좌관 지인에게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서 1000만원의 국회 예산을 받아냈다가 적발됐다.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선거운동을 도와준 사람에게 수천만원의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연구용역보고서 중에는 다른 보고서를 통째로 베낀 것도 있었다. 실제로 연구를 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 외에 찍지도 않은 정책자료집을 찍었다고 허위로 서류를 꾸민 국회의원도 있었고, 다른 기관의 보고서를 통째로 베껴서 의원실 명의의 정책자료집을 낸 국회의원도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돈을 뒤늦게 반환했지만, 그랬다고 죄가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적용 법조문까지 명시해서 고발을 했다. 허위서류로 세금을 빼먹은 국회의원들에게는 사기죄를 적용하면 되고, 통째로 남의 보고서를 베낀 부분은 저작권법 위반죄를 적용하면 됐다. 물론 통째로 베낀 정책자료집은 실제로 발간했는지 의심스러웠다. 발간을 안 했다면 사기죄까지 성립될 수 있다. 

고발인 진술을 마치고 검찰청을 나오면서 그래도 기대를 가졌다. 그후 2019년 1월 추가 고발인 진술을 할 때에도 느낌은 좋았다. 수사관은 매우 충실하게 조서 작성을 준비해 두었다. 내가 본 진술조서 중 가장 정리가 잘된 조서가 아닐까 싶었다. ‘이 정도면 관련 업체들과 국회의원실을 압수수색하겠지’라고 기대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순진했다. 대한민국 검찰은 선별적 수사, 선별적인 기소를 하는 곳임을 잊고 있었다. 촛불로 정권이 바뀌었어도 검찰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조직이 아님을….

그래서 조국 장관 수사를 보며 분노가 치밀었다. 나에게는 수사인력이 없다고 했는데, 조 장관을 수사하는 것을 보면 검찰의 수사인력은 무제한인 것 같다. 어떤 사건엔 수사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어떤 사건은 수사인력이 없다는 핑계를 댄다면, 그것 자체가 검찰권 남용이다. 

일반적인 고소·고발 사건은 3개월 내 처리하는데, 위 사건은 최초 고발로부터 11개월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수사권도 없는 시민단체와 독립언론이 국회의원 11명의 비리를 찾아내 고발했는데, 검찰이 손놓고 있는 건 직무유기다. 

게다가 공소시효가 지나가고 있다. 지금 고발한 것은 주로 20대 국회 초반 1년치에 대한 것이다. 시민단체와 독립언론의 부족한 인력으로 1년치만 조사했는데도 여러 비리들이 나온 것이다. 만약 사기죄의 공소시효인 10년 내의 건들을 모두 수사하면 어마어마한 비리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고 있고, 오래된 건들은 공소시효가 지나가고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기소하려고 애를 쓰더니, 이 중대한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에 신경도 안 쓰는 모양이다. 

‘검찰사무보고규칙’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범죄는 상급 검찰청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검찰 지휘부가 이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는 대규모 압수수색을 하지 않는 것인가? 국회의원도 살아있는 권력이 아닌가? 

검찰이 정치검찰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다면, 국회의원들의 범죄에 대해 제대로 수사부터 해야 한다. 녹색당이 지난 2월 고발했는데, 7개월이 넘도록 고발인 진술조차 받지 않고 있는 최교일 국회의원 건도 마찬가지다. 지자체 예산으로 뉴욕 여행을 가서 스트립바까지 출입한 사건에 대해 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인가? 최교일 의원이 검찰 고위직 출신이어서 그러는가?

이런 일을 겪으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만약 공수처가 있었다면, 국회의원 비리를 공수처에 고발할 수 있었다. 공수처가 또 다른 권력기관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는 ‘지금 이대로’ 가자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 이대로는 정치검찰의 행태를 바꿀 수 없다. 공수처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의 문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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