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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토록 노심초사하며 기다려왔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반도의 비핵화와 종전 및 평화체제 수립의 과정은 불가역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대로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면 일어나지 못했을 일이다. 국민들의 성원이 뜨겁다. 덕분에 이번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번 선거 전과 후로 나뉠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동안 우리 사회와 정치를 모든 면에서 비틀어 왔던 비정상적 분단체제가 항구적 평화체제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치러진다. 여기서 냉전 극우주의 세력인 자유한국당이나 보수를 혁신한다면서도 안보보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바른미래당은 정치적으로 설 자리가 없음이 확인될 것이다.

보수 진영이 기왕의 부패에 더해 평화라는 이 압도적인 시대정신을 외면한 대가다. 이제 지역 차원에서도 주류 교체가 이루어져 민주당이 우리 사회의 중심 정당이 된다. 그만큼 민주당이 져야 할 역사적 책무도 크다. 가야 할 길도 분명하다.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과제는 늘 분단을 핑계로 정당화되어 왔던 우리의 일그러진 ‘결손 민주주의’를 온전한 민주주의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민주당은 무엇보다도 좌초된 개헌부터 다시 추진해서 새 민주주의 체제를 앞장서 준비해야 한다. 기왕의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국회 차원에서 지난 30년 동안의 우리 민주주의 한계를 더 살피고 국민의 기본권을 더 잘 보호하며 곧 도래할 한반도 평화체제의 지상명령을 더 올곧이 담아낼 헌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개헌은 촛불혁명의 완수라는 의미와 함께 분단체제가 우리 사회와 정치에 가한 질곡을 완전하게 떨쳐내는 새로운 역사적 시대를 선언하는 함의도 가질 것이다. 물론 선거법 개정도 미룰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시민들의 물질적 안정이 확보되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온전할 리 없다. 민주당은 촛불혁명의 정치적 집행자로서 또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자로서 한동안 다수당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지위는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광범위한 세력들로부터 심층적이고 장기적인 지지를 얻어내지 않고는 안정적일 수 없다. 민주당은 유럽의 사회민주당이나 뉴딜 때의 미국 민주당과 같은 진보적 기축 정당이 되어 복지국가를 위한 확고한 정치적 동맹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포용적 복지국가는 평화체제의 가장 직접적인 함축이다.

물론 우리는 유럽이나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런 복지동맹을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서도 ‘유럽의 지방화’가 필요하다. 유럽의 경험을 참조하되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제 19세기 이래 유럽 자본주의의 발전 경험에만 기댄 진보 정치 모델과 결별해야 한다. 민주당이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서구적 진보 정당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촛불혁명을 비롯해 우리의 현대사가 명확하게 보여준 건 ‘시민적 진보’의 길이다. 우리의 복지국가 기획은 광범위한 계층의 시민적 연대라는 토대 위에 서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과연 이런 과제를 감당할 만한 충분한 역량과 비전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가령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많은 후보들이 과거 보수 진영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 당이 이제 우리 정치의 새 주류로 등극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당의 인적, 이념적 한계와 그 모호한 정체성도 웅변한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이런 한계와 모호성을 계속 방치한다면, 민주당도 결국 특정한 종류의 기득권 정당으로 전락하여 스스로 몰락의 문을 열게 될지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진보 정당이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쩌면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새로운 종류의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할 수도 있다.

토마 피케티는 최근 서로 다른 선거 제도와 정치적 전통을 가진 프랑스, 영국, 미국 모두에서 왜 민주주의가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실패하고 극우 포퓰리즘에 포획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그 주된 이유는 중도 좌파 정당들의 정체성 변질이다. 간단히 말해 세 나라 모두에서 본디 하층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던 중도 좌파 정당들이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은 소수의 ‘브라만 좌파’(강남좌파)를 위한 정당으로 바뀌면서 절대 다수 하층 시민들의 처지와 이해관계를 무시한 결과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바로 이런 길로 빠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이번의 최저임금법 개정이 그 징후가 아니길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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