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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진행되면서 그에 대한 해석 투쟁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늘 크고 작은 성 관련 추문으로 시끄러웠던 자유한국당 쪽에서는 신이 나서 좌파의 성문화가 원래 문란하다고 조롱하고, 가끔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김어준은 거봐란 듯이 ‘공작’ 운운하며 맞불을 놓는다. 모두 헛소리다. 그런 언설들 자체가 지금 미투 운동이 일어나게 된 중요한 배경을 보여줄 뿐이다. 고은 시인이나 연극연출가 이윤택, 특히 안희정 전 지사의 범죄적 행각에 대한 고발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도덕적 이중성이 진보진영 전반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연하다. 그러나 어딘가 밋밋해 보이기도 한다.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번 사태는 진보진영 전반의 어떤 은폐된 흉상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많은 피해자의 폭로와 고발을 들으면서 문제가 단지 진보를 자처하는 몇몇 예술가나 정치인 개개인의 왜곡된 성의식이나 그에 따른 범죄적 행각이 아님을 생생하게 확인했다. 문제는 너무도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남녀 사이의 권력 불균형과 어떤 사회문화적 무의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여성혐오가 낳은 구조적 불의다. 이번에 확인된 것은 사회적 불의에 맞선다는 많은 진보인사들이, 단순히 그러한 불의에 둔감했다는 정도를 넘어, 심지어 그 중요한 일부를 함께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진보이기를 자처해 온 모든 이들, 특히 남성들이 부끄러워하면서 그동안의 진보정치와 문화에 대한 뼈아픈 성찰의 계기로 삼을 일이다.

지금의 미투 운동은 1987년 6월항쟁 이후에 일어났던 이른바 ‘노동자대투쟁’에 비견될 수 있다. 이 투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주변에만 머물러 있던 노동자들은 미흡하나마 얼마간의 분배정의를 실현할 수 있었고, 또 우리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었다. 이제 지금까지 사회적 약소자로 머물러 있던 여성들이 억압을 떨치고 일어나 견디기 힘들었던 슬픔과 아픔을 고발하며 정의를 세우겠다고 외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이제 더 ‘깊은 민주주의’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데 대한 엄숙한 지상명령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지배의 형식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서로의 평등한 존엄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다. 그런 사람들이 공동의 틀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협력하며 함께 문제를 처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과 방식 그 자체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그런 인간적 삶의 양식 속에서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좁은 의미의 정치적·제도적 차원에만 신경을 썼을 뿐, 이 일상적 삶의 양식의 인간적 질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미투 운동은 우리의 일상적 생활세계가 여성 같은 사회적 약소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무시하는 문화적 악습에 여전히 심각하게 침윤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주었다.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이제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개인의 인성은 물론이고 일상적 수준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교류 방식, 나아가 문화적, 도덕적 가치의 문제로도 향해야 한다. 우리의 생활세계를 인간화하고 일상적 삶의 문화를 민주화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갈 길이 멀다. 여성에 대한 억압은 결코 무슨 진화적 필연성의 결과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성차별 문화를 만들어냈던 조선의 유교화 과정을 생각해 보라. 그 과정은 단숨에 이뤄지지도 않았고 자연스럽게 성공을 거두지도 않았다. 여성 지위의 급격한 하락을 가져왔던 그 유교화 과정은 100년 이상의 오랜 시간에 걸쳐 그리고 향약을 비롯한 다차원적인 교화 장치를 통해 사람들의 일상적 삶 전체를 포섭했다. 삼강오륜의 도덕과 음양론이라는 형이상학적 지지대도 동원했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의 힘이 얼마나 심대하고 강고한지 처절하게 깨닫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도 그만큼 끈질기고 전방위적이어야 한다.

단순히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된다. 그런 게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그런 개혁은 언제나 문화적 혁신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개혁은 문화개혁이 표현되는 구체적 방식이자 결과가 되어야만 튼실하고 온전할 수 있다. 미투 운동 덕분에 우리는 촛불혁명이 적폐청산이나 개헌을 넘어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소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이 존중되는 민주적 생활세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더 깊은 수준의 과제도 갖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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