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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김상곤 부총리가 ‘경질’되었다. 안타깝고 씁쓸하다. 지지율이 하락하든가 하면 국면 전환을 위해 개각을 해왔던 그동안의 우리 정치 관행을 문재인 정부도 비껴가지 않았다. 교육같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장관이 이런 식으로 단명해서야 최소한의 개혁이라도 가능할지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고, 새 장관이 당장 관료들을 장악하는 일조차 만만치 않을 텐데 말이다.

이번 경질의 빌미가 되었던 대학입시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교육부가 어떤 결정을 내놓았더라도 사회적인 논란과 일부 집단의 반발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 문제는 우리 사회의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폐단과 관련이 있으며, 다양한 세력들이 다투고 충돌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본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에서 두번째)·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등 국무위원들과 인사하며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대학입시는 결국 상위 10% 정도의 학생들이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규칙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학령인구가 큰 폭으로 감소하고 대학 정원은 실제로는 남아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금과 같은 입시지옥에 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대학에 갈 수 있다. 문제는 모두가 ‘서울’의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 하지만 극히 일부만 그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좋은 학벌에 대한 많은 시민들의 욕망 그 자체를 어떻게든 다스리지 않는 한 어떤 규칙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 욕망은 사실은 계층의 상승 또는 유지에 대한 욕망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부자일 확률이 높다. 막대한 사교육의 효과다. 그러나 가난한 부모도 자식들은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중에 사회적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해줄 명문대 입시의 규칙이 어떻게든 부모의 경제적 여유와는 연관성이 적었으면 하고 바란다. ‘공정한’ 대입제도가 의미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이 은폐된 계층갈등의 승자는 처음부터 명백하다. 부자 부모들은 규칙이 어떻게 정해지더라도 가난한 부모들보다 자식들을 더 잘 적응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규칙 자체를 어떻게든 자기편에 유리하게 만들려고 온갖 영향력을 발휘한다. 수능 절대평가 같은 제도를 쉽사리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한 개혁은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뚜렷한 개혁 철학과 비전,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정치적 ‘뚝심’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또 그래서 입시문제에 대한 표피적 접근으로는 문제를 어떻게 다루든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피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그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결국 대학서열을 해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대를 획기적으로 육성해야 하고, 또 그러자면 우리 사회 전체에서 사적이거나 공적인 좋은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을 완화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그 경쟁의 승자와 패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의 너무도 큰 격차를 줄여야 한다.

쉽게 말해 지방대를 나와도 대기업이나 공기업 같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게 하고,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육체노동을 하더라도 충분히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문제는 결국 사회문제이고 노동문제이며 복지문제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서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들의 체계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문제의 뿌리에 다가갈 수 있다. 역시 관건은 정치다.

문 대통령은 ‘정치인’에게 장관직을 맡기면서 교육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조율해 줄 것을 우선적으로 주문했다. 그러나 좀 더 담대한 비전을 그려볼 수는 없을까? 새 부총리는 교육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부터 다시 던져보길 바란다. 민주공화국에서 교육은 어떻게 시민들의 평등한 존엄성과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는가?

입시문제만이 교육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의 영역을 다른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인 힘들이 작동하기 어려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교육자들이 건강하고 역량 있는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학비리 근절, 교육 공공성 강화, 학교민주주의의 확립, 민주시민교육의 강화 같은 문제들이 진짜 중요한 교육문제들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입시문제도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새 부총리가 교육개혁의 참된 초석을 놓기를 기대해 본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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