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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지난해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종종 차를 운전하고 다님에도 교통사고를 피했다. 운전을 하고 다님에도 싱크홀(땅꺼짐)도 만나지 않았고, 포토홀(포장면에 구멍이 생기는 것)도 당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제주도행 비행기 타고 가다가 죽는 줄 알았지만 결국은 무사했다. 공사 현장 옆을 수없이 지나다녔지만 다행히 크레인이 넘어가거나 건물이 붕괴되는 일도 겪지 않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 있었지만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저런 사유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병에 걸려 죽는 이들도 있었지만 돌연한 사고로 죽어간 이들도 있고, 아직까지 실종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올해도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안전사고라는 게 미리 예고를 하고 오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런저런 사고들도 있지만 특히 여성들은 증오범죄를 당할지도 모른다. 이주민의 경우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십만명이 한 해에 죽어 가는데 정상적인 과정이 아닌 이유로 죽어가는 이들이 유난히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 죽음들이 너무 많아서 지극히 익숙한 나라다. 최근에 전쟁이 일어날 것같이 불안한 중동의 이라크에서 2003년부터 9년 동안의 전쟁 중에 16만2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9년 동안 한국에서 자살로 12만명이 죽고, 산재로 2만명이 죽고, 교통사고로 4만명 정도가 죽었다. 이렇게만 따져도 이라크 전쟁 9년 동안 한국에서는 자살자와 산재 사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가 대략 18만명이었다. 이 숫자도 평균보다 낮게 잡은 것이니 이보다 더 많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 대한민국은 전쟁 중인 나라가 아닌가. 일상이 전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문제 제기를 한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 지난해처럼 올해도 사람들은 생계문제로 벼랑 끝에 내몰려 자살할 것이고, 산업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길거리에서도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다. 교통사고로 죽는 이들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포함되리라. 

지난해 말 어린이 교통사고 관련 법안인 하준이법, 민식이법이 통과될 때의 국회 모습이 생각난다. 아이를 잃은 엄마들이 국회의원들 앞에 무릎을 꿇고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정치 싸움에 골몰한 국회의원들은 그런 엄마들을 매몰차게 외면했다. 다행히 두 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같은 어린이 교통안전 법률안인 태호·유찬이법 등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어떤 의원은 국가기관의 재정 부담이 높다고도 했고, “법 이거 하나 더 만든다고 사고가 안 생기냐”고도 했다고 한다. 저출산이 심각하다고 하는 나라에서 어린이가 한 해 교통사고로 150명 죽어가는데도 이렇다. 

며칠 전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기업의 고위직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원청의 책임을 높이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시행을 앞두고 대기업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한 기업의 임원은 기업의 부담을 말하면서 “산재 발생으로 사업장에 내려진 작업중지 명령을 해제해달라고 신청하면 이를 심의할 위원회가 열리는 데 4일이나 걸릴 수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긴급한 작업에 대해서는 안전보건평가를 생략하는 등 승인 절차를 간소화해 최단 시간에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사람이 죽는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그 원인을 제거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인데, 여전히 기업이나 정부나 기업의 이윤이 먼저다.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하는’ 노동건강연대의 활동가가 스웨덴 사람을 만나 물었다고 한다. “스웨덴에서는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나요?” 그러자 그 스웨덴 사람이 “사람이 일하다 왜 죽나요?” 하고 반문했고, 이에 활동가는 충격을 받았단다. 인권운동가 류은숙씨가 최근 펴낸 책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이게 정상인데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대국을 자랑할 일이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고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다. 왜 사람의 죽음에는 이리도 무감한가. 지난해 경향신문이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제목으로 우리 산업재해를 고발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김용균특별조사위에서 안전대책을 권고하면서 안전분야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권고했지만 이것도 거부되었다. 민간기업이 아닌 공사에서도 이러니 민간기업이 알아서 산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리 만무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은 국회에 계류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주장했다. 기업이 알아서 산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므로 강력한 처벌을 통해서라도 강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생명안전시민넷은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되도록 노력한다. 재난참사를 당한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내용이 중심이다. 힘이 센 국가나 정부기관, 기업에 무릎 꿇고 호소한다고 해서 안전해지지 않는다. 피해자가 힘을 가질 때야 안전대책 요구가 정책과 제도로 반영될 것이다. 그래서 “평등해야 안전하다”는 말은 진리다. 

2020년은 생명안전의 원년이 될 수 있을까? 이윤보다 생명, 안전의 가치가 우선되는 그런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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