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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큼 역동적인 나라가 있을까? 지난 주말에 판문점에서는 남·북·미 3개국 정상이 합동으로 연출해내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큰 사건 앞에 다른 사안들은 쉽게 잠식당해 버리기 일쑤다. 인권의 문제는 더욱 그렇다. 인권의 목소리가 힘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권 중에서도 스포츠인권과 같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다만 스포츠인권과 관련해서는 스포츠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 사건이나 일어나야 사람들은 관심을 가질 뿐이다. 스포츠혁신위원회가 4차에 걸친 권고안을 발표했다는 뉴스는 주목받지 못한 채 흘러가버렸다. 체육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견인하는 중요한 내용이었고, 그러기에 체육계 내 기득권세력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6월은 U-20 월드컵으로 뜨거웠다. 매번 경기를 드라마같이 치르면서 결승전에 안착하는 그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남자 축구가 월드컵 결승에 올랐으니 그럴 만했다. 그런 한국 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팀의 막내인 이강인이었다. 그가 킬 패스와 발기술로 상대 선수를 따돌리면서 공간을 확보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그래서 준우승 팀임에도 불구하고 이강인 선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세계적인 선수인 마라도나, 메시가 받았던 그 상을 받은 것이고, 당연히 그의 몸값은 올라갔다. 

그런데 만약 이강인 선수가 한국에서 학생선수로 성장했다면 오늘의 그가 될 수 있었을까? 정규 수업 중에도 합숙훈련을 받아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당연한 훈련을 받았다면 과연 그는 엘리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는 유년기에 스페인으로 축구유학을 떠났다. 

“낮 12시 반까지 수업이 있었어요, 점심 먹고 다시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했고, 수업 끝나면 집에 가서 간식 먹고 6시에 훈련장 가서 9시에 집에 왔어요.” 

그는 운동선수였지만, 학교에서 정규 수업을 모두 다 받았고, 평일에 2시간 정도만 훈련을 했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수업 다 빼먹고, 수업에 들어가도 멀뚱멀뚱 수업에도 따라가지 못했던 게 아니었다. 스페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이전 학기에 85% 이상 출석해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고, 정규 수업 중에는 훈련도 금지되고, 연습이나 대회도 없다. 일본 문부성은 학교운동 운영 원칙에서 평일에는 2시간만 훈련을 허용하고, 주말 연습도 전일 연습을 금하고 있고, 대회 출전을 주말에 했을 경우는 평일 중 하루를 쉬도록 하며, 아침운동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따는 선진국들일수록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일수록 학습권을 인권으로 보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은 고심을 하고 있고, 이미 그를 위한 시스템이 상식으로 정착되어 있다. 오로지 엘리트 선수만을 육성하는 한국 시스템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권고가 지난 5월31일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나왔다. 학기 중에는 주중 대회를 금지하고, 최저학력에 도달한 학생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며, 장시간의 훈련과 합숙을 금지하고, “전국소년체육대회는 학교운동부와 학교스포츠클럽이 참여하는 통합 학생스포츠축전으로 확대·개편”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체육계에서는 난리가 났다. U-20 월드컵 결승전이 막을 내린 직후인 6월18일,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의회 등 8개 체육단체는 연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위원회 권고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권고라는 것이었다. 소년체전을 현행대로 유지하고, 지금과 같은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학생선수들의 공부를 지원하라는 주장이었다. 1972년에 전격적으로 도입된 국가주의 엘리트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선택받은 그들, 엘리트 스포츠 분야에 종사하는 그들이 체육계를 대표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2017년 열린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는 고졸 754명, 대졸 207명 등 964명의 학생선수가 지원했다. 이 중 100명만이 프로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프로의 문턱을 넘은 100명 중에 그라운드에 서는 기회를 얻은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오로지 운동만 했던 이들의 미래는 누가 보장해줄까? 오로지 소수의 몇 명만을 위한 스포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 바뀌고, 그런 가운데 스포츠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발굴되는 시스템이어야 다른 학생들도 소외되지 않는다. 

올림픽헌장은 스포츠가 인권임을 일찌감치 선언했다.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권리이다. 모든 인간은 어떠한 차별 없이 올림픽정신 안에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올림픽헌장 제4조다. 나아가 헌장 제6조는 이런 권리가 “인종, 피부색, 성별, 성적지향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 없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체육계에 만연한 인권침해와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권고를 6월까지 4차에 걸쳐서 권고했다. 이 위원회의 권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두를 위한 스포츠’다. 올림픽헌장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권고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으로 굳어진 내용들을 권고하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체육을 즐길 수 있고, 그런 가운데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일, 그래서 합숙소에서 불이 나 청소년 선수 수십명이 사상을 당하는 일이 없고, 미래의 선수생활을 소수의 코치나 감독에게 저당 잡혀서 온갖 인권침해에도 침묵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도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권고가 잘못일 수 없다. 스포츠가 모두가 향유해야 하는 인권임을 부정하는 잘못된 스포츠 시스템은 개혁되어야 한다.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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