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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 명부(冥府)다. 저승이란 곳이다. 저승엔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이 있다고 한다.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에 앉아 있다. 염라대왕 앞에는 아홉 면의 업경(業鏡)이 있다. 하나하나의 거울에 한평생 지었던 죄업이 차례로 떠오른다.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다. 일종의 CCTV다. 꼼짝 마라다.

이승엔 그런 거울이 없다. 그러니 마음 놓고 ‘모른다’고 발뺌할 수 있다. 김기춘은 1975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총지휘했다. 당시 한국에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이 대략 200~300명이었다는데 이 중 10%가량이 간첩으로 몰렸다. 혹독한 구타와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 피해자들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김기춘은 그때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기춘에겐 기억도 나지 않는 하찮은 사건으로 학생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수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반성도 사죄도 없었다. 단죄도 없었다.

김기춘이 마침내 구속됐다. 생애 첫 수감이다. 김기춘은 정부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다 끊으라고 지시했다. 이를 위해 1만명에 달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는 40년 전에 “공산주의자들은 무좀과 비슷하다. 약을 바르면 잠시 들어갔다가 약을 바르지 않으면 또 재발한다”고 했다. 1975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602달러였다. 지금은 3만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때에 비하면 소득뿐 아니라 삶의 질과 다양성, 지적 수준, 정보는 50배, 100배 이상 높아졌다. 김기춘의 시계는 40년 전에 멈춰 서 있다. ‘무좀 리스트’를 만들었던 그 사고 그 수준으로 지금 또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해마다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고은 시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영화배우 송강호·김혜수·하지원, 영화감독 박찬욱 등이 들어 있다. 김기춘에겐 모두 무좀 같은 존재들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혐의로 지난 21일 새벽 구속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2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연합뉴스

194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작가인 돌턴 트럼보는 미국에서 무좀 취급을 받았다. 당시 미국은 좌파 성향의 극작가·감독·배우의 활동을 막기 위해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매카시즘 광풍 이후엔 그 숫자가 더욱 불어나 많은 영화인들이 공산주의자 혹은 동조자로 몰렸다. 미 의회 청문회의 추궁에 트럼보는 “네, 아니요로만 대답하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노예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일자리를 잃었다. 생계를 위해 트럼보는 11개의 가명으로 작품을 썼다. 가명으로 쓴 ‘로마의 휴일’(1953), ‘브레이브 원’(1956)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식에도 나타날 수 없었다. 트럼보는 훗날 ‘악마의 시절’이라고 그때를 회고했다.

김기춘은 21세기 대한민국에 악마의 시대를 재현했다. 2014년 6월14일 김영한 민정수석 부임 첫날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공직·민간·언론을 불문하고 독버섯처럼 자랐다’ ‘정권에 대한 도전은 두려움을 갖도록 사정활동을 강화하라’고 했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으니 위태로운 자, 인간 쓰레기를 솎아내는 일을 점진적으로 추진토록 하라’고도 했다. 김기춘은 네, 아니요로만 대답하기를 강요했다. 아니요라고 하는 사람은 무좀으로, 독버섯으로, 인간 쓰레기로 취급하라고 그는 명령했다.

대한민국 어두운 역사, 부끄러운 과거마다 김기춘 이름 석자가 빠지지 않았다. 부산 초원복집 지역감정 발언은 도청 사건으로 뒤집었다. 김기설 분신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으로 돌려놓았다. 세월호 참사는 유병언 잡기와 유족들에 대한 공격으로, 정윤회 문건은 지라시 유출로,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국기문란으로 몰아 상황을 반전시켰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태블릿 PC 출처 시비로 또다시 국면을 바꾸려 했다. 위기 때마다 본질을 덮고 “불이야” “강도야”라고 외친 사람을 잡아 가뒀다. 그는 법비(法匪), 법을 악용한 도적이라고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말했다.

법비는 48년간 이 나라를 활개치고 군림했다. 그건 누군가의 용인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수언론은 그에게 ‘미스터 법질서’란 애칭을 붙여줬다. 거제 주민들은 3선 국회의원을 만들어줬다. 박근혜는 그를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불러들였다. 부끄럽다. 이 나라는 친일도, 유신 잔재도, 군사독재도 제대로 청산해본 적이 없다. 대청소를 할라치면 미래로 가야지 과거를 들쑤셔서 어쩌자는 거냐고 덤벼든다. 그 결과가 김기춘이란 괴물을 만들었다. 온 나라에 제2의 김기춘이 즐비하다. 정의도 아니다.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는 말은 저승의 법정 몫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이승의 법정에서도 정의는 행해져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서도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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