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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직을 정년퇴임하던 날이었다. 밤이 깊을 때까지 나는 서재에 앉아 있었다. 창 너머 북악은 캄캄했다. 교수보다 작가가 본업인 걸 한번도 잊은 적이 없으므로 교수직의 정년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문제는 나이가 주는 자의식. 65세라니, 아주 낯선 느낌이었다. 나는 서재를 둘러보았다. 이만하면 가난한 젊은 날 꿈꾸던 서재에의 소망을 충분히 이루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하, 나는 이미 가난하지 않구나.

난데없이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웬일인지 비탄에 가까운 중얼거림이었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거실이 있고 TV, 오디오, 자동차도 있으며 평생 동안 나의 충직한 시종처럼 살아온 아내도 있었다. 아내는 앞으로도 계속 밥을 짓고 빨래를 해줄 것이었다. 부족한 것이 없었다. 아이들 셋도 결혼해 분가했으니, 이제 서재에 들어 앉아 평생 꿈꾸던 대로 “오로지 소설 쓰기”로만 살면 될 터였다. 그런데 이 불안감은?

창조적인 에너지는 당연히 ‘내적분열’에서 나온다. 작가의 상상력은 더욱 그렇다. 작가는 자신이 사는 시대가 가장 위태롭다고 느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이웃의 삶이 벼랑길에 놓여 있다고 늘 생각한다. 객관과 주관, 집단과 개인, 광장과 밀실을 수시로 오가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상승과 추락,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왕래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내가 느낀 불안은 바로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부족함이 없는 것. 안온한 일상이 불러올지 모르는 부식(腐蝕)에의 공포. 이를테면 나는 앞으로 걸어갈 길이 보다 안전한 인도일지 모른다는 예감에 본능적으로 공포감을 느꼈던 셈이었다.

바로 그때, 하나의 처방이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이혼이었다. 아내와 나는 연애해서 결혼했고 애 셋을 낳아 기르면서 40여년을 비교적 무난히 함께 살아왔다.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로서의 욕망에 따른 갈등도 대부분 봉합됐으니 싸울 일도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 혹은 동행자로 남은 인생 순하게 함께 걸어가면 될 것이었다. 그런 아내와 늘그막에 이혼한다면 그 여파는 만만하지 않을 터였다. 그것이 불러올 고통스러운 파동이 일파만파, 내 감수성 썩을 일 없이, 그 에너지로 계속 소설을 뜨겁게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그래서 부리나케 침실로 내려갔다. 깊은 밤, 아내가 촉수 낮은 불빛 아래 잠들어 있었다. 일어나 봐. 아무래도 우리, 이혼을 해야겠어! 그 말이 내 목울대에 걸려 있었다. 나는 아내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생의 무게가 얹힌 가면 같은 얼굴이었고, 또한 한없이 낯설었다. 연애하던 시절의 처녀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러나 아내를 깨우려는 순간 난데없이 콧날이 시큰해졌다. 뭐랄까, 늙은 아내의 잠든 얼굴엔 40여년의 세월을 살면서, 함께 살아야 했기 때문에, 상실한 것들이 오롯이 깃들어 있었다. 그동안 얻은 것들도 없지 않을 텐데,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잃어버린 청춘의 빛과 무위하게 낭비한 시간들, 함께 살아오느라 알게 모르게 어느 낯선 길가에 우리가 버려두고 온 젊은 날의 이상도 낱낱이 보였다.


나는 아내를 깨우지 못하고 서재로 올라왔다. 실패였다. 아직도 젊고 여전히 빛나는 아내라면 모를까, 누군가와 함께 사느라 잃어버린 것이 많은 늙은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그 대신 아침 식탁에 마주 앉아서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있잖아, 나 어디 먼 시골로 글방을 옮길까 하는데 이사할래?” 아내가 내 앞으로 굴비그릇을 옮겨주며 대답했다. “애들도 다 여기 있고, 나 시골로 아직 못 가. 환경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 혼자 왔다갔다 살아. 그건 오케이 할게.” 옳거니. 그것은 예상했던, 내가 원하던 대답이었다. 이 나이에 어느 먼 변방에서 라면이나 끓여먹으면서 혼자 고절하고 불편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나의 짐승 같은 감수성을 훼손하지 않고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내가 논산으로 내려간 걸 두고 유유자적, 무위자연 등을 떠올리면서 나이가 들었으니 자연스럽게 존재론적 시간의 사이클을 따라 회향했다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틀린 상상이다. 내게 아직 남은 불꽃이 있다면 여전히 가슴속에 도사린 단심으로서의 자기 갱신을 향한 욕망이다. 자기 갱신의 욕망이 있다면 늙었어도 청춘이요, 자기 갱신의 욕망이 없다면 젊었어도 이미 그는 늙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갱신이란 본원은 유지하되 자신을 둘러싼 삶의 조건과 양식을 과감하게 바꾸는 일종의 ‘나 홀로 혁명’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그렇다. 나는 평생 어떤 집단에도 소속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왔으며, 여러 방법을 동원해 ‘나 홀로 혁명’ 혹은 작가로서의 ‘자기 갱신에 대한 욕망’을 훼손당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자기 갱신의 욕망이야말로 단독자로 살아야 하는 작가의 운명은 물론이고, 의미 있게 살고 싶은 한 존재로서의 삶을 떠받치는 큰 지렛대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의 일부 청년들은 예전과 달리 너무나 안전한 인도를 따라 걷는다. 그렇지 않은가. 자본주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많은 어른들도 그렇고, 정치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도 대부분 그러하다. 그들에게 최상의 행복은 자본이 주는 소비의 감미이거나 기득권의 전략적인 방어밖에 없다. 예컨대 여전히, “국정원”이나 “폐기처분된 공약” “선거공학” “대박” 등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어떤 이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대박!”이란 비속한 말로 자신의 이상을 설명한다.

내가 젊던 시절로부터 거의 반세기를 지나왔는데도 자동차가 좀 더 빨라지고 아파트가 좀 더 넓어진 것을 빼면 세상이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는 자각과 만나면 숨이 탁 막힌다. 그럴 때 나는 호숫가 외딴집으로 가서 ‘마이웨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숨을 고른다. “이제 끝이 다가오는군/ 이제 마지막 커튼도 내 앞에 있어./ 나의 친구여, 확실하게 말해두지/ 나는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할 거야.” 나를 갱신시키려는 욕망으로 몸과 마음이 푹 퍼질지 모르는 늙어가는 나를 경계하고 싶기 때문이다.


박범신 | 작가·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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