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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두 번의 큰 선거, 3월의 대통령 선거와 6월의 지방선거를 치렀던 한 해이기도 했다. 이제는 누구를 막론하고 선거에 대한 이야기에 신물이 나겠지만,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순간이 온 것도 사실이다. 선거가 없는 내년이 아니면 당분간은 우리 선거제도에 대한 공개된 논의를 진행해볼 기회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우리 정치를 규정하고 있는 적대적 양당 대립의 공생관계가 상당히 우리의 선거제에 연원한다고 생각하며, 정치 개혁을 위한 여러 노력의 첫 단추는 선거제도 개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거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단순다수제, 즉 유권자는 후보 1명을 선택하여 투표하고,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선거규칙이다. 우리의 대통령이 그렇게 선출되게 되어 있고,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광역 및 기초 단체장들 또한 그렇게 선출되도록 되어 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취하고 있는 다양한 선거제도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제도이다.

선거제도가 단순한 것은 매우 중요한 미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때로는 모든 것을 흑백으로 단순화하는 그 과감함이 역으로 정치를 단순화하고 대립적인 구도로 몰고 가고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선거 과정에서 특정 후보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쟁자보다 한 표라도 더 얻는 것, 따라서 내가 표를 얻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표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러니까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과정에서 2등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애초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군소정당이나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고려 대상이 되기가 힘들고, 그래서 모든 것이 양당제적 대립으로 빨려들어가게 되는 것 아니었던가. 

정치학자들에게 ‘뒤베르제의 법칙’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단순다수제적인 선거제도가 양당제적 대립으로 이어진다는 법칙의 교과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 정치가 되었다. 우리 대통령 선거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나아가 단체장 선거들이 예외없이 이러한 경로로 치달았으며, 두 번의 선거를 치른 연말의 한국 정치는 여전히 선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우리 정치의 여러 문제점들이 선거제도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라면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다시 되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된 흥미로운 현실적 대안 중 하나는 아마 ‘결선투표제’일 것이다. 이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대표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서, 첫 라운드에서 어느 후보도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한다면 1, 2등을 차지한 후보를 대상으로 이후 다시 결선투표를 하는 제도이다. 단점은 당연하게도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든다는 것이겠지만, 여러 가지 장점도 상상해볼 만하다. 

가장 중요한 장점은 적어도 선거가 훨씬 활력 있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현재의 선거제하에서는 대선이건, 국회의원 선거이건 가장 첫걸음이 양당의 공천을 받는 것이지만, 결선투표제하에서라면 훨씬 넓은 스펙트럼의 후보와 정당들이 1차 투표에 참여할 유인이 있을 것이며 더욱 다양한 목소리와 의제들이 정치의 영역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 중요하게는 상대 후보자들을 악마화할 유인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된다. 1차 투표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결선투표에서 나를 지지해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따라서 정책의 상이성만큼이나 유사성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강조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책연합의 가능성을 더 다양하게 타진할 기회를 주는 것이 결선투표제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에서 결선투표제를 꼭 대통령 선거에 국한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 채택된다면 소선거구제의 문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를 2번 연이어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애초 투표를 할 때 좋아하는 후보의 순위를 매기는 대안투표제 혹은 즉석결선투표제를 구현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호주 하원의원 선거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거제도이기도 하다. 

요컨대 선거제도는 꼭 단순한 것이 미덕일 수만은 없다. 우리 선거제도가 우리 정치를 단순화, 흑백화, 2비트화 시킨 것이 아닌지, 유권자의 눈에만 보이고 정치의 영역에서는 제거된 미묘한 회색의 영역을 살려낼 선거제도를 본격적으로 고민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연재 | 박원호 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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