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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결산하는 시기다. 교수신문을 보면 대학교수들은 올해 한국 사회를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성은커녕 ‘네 탓’만 하는 정치권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정치권의 한 해 결산은 멀어만 보인다. 내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은 법정처리시한(2일)과 정기국회(9일)를 지나더니 김진표 국회의장이 ‘데드라인’으로 정했던 시점(15일)을 넘겼다. 김 의장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지”라고 역정을 낼 정도다.

그래도 요지경 같았던 올해 정치를 결산하는 데는 사자성어가 맞춤이다. 여야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자주 썼거니와, 사자성어를 두고 당 내홍이 깊어지기도 했다. 

우선 하나를 꼽으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양 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판다’는 의미로, 겉과 속이 다름을 비판할 때 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거대 야당 대표와 범죄·비리 의혹의 끝판왕이라는 지위를 동시에 유지하고 있는 양두구육형 대표”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양두구육 논쟁의 격전지는 국민의힘이었다. 

지난 7월 이준석 전 대표가 “그 섬에서는 앞에서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정상배들에게서 개고기 받아와서 판다”라고 한 게 시발점이다. 이 발언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을 모독했느니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을 겨냥했느니 하면서 당 안팎에서 난타전이 벌어졌다.

논쟁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자성어(?)가 하나 더 나온다. ‘체리따봉’이다. 이 전 대표 발언 전날 윤 대통령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노출되면서 사달이 났다. 윤 대통령은 이 전 대표를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로 규정하고 체리가 ‘엄지 척’ 하는 이모티콘을 달았다. 이 일을 계기로 집권여당에선 두 달 넘도록 내홍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일이 벌어졌다. 최고위원 줄사퇴에 따른 비상상황 선포 → 주호영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  이 전 대표 가처분 신청에 따른 주호영 비대위 좌초 → 정진석 비대위 출범…. 사고 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상식을 벗어난 일이 줄을 이었다. 

최근 여권의 행태를 보면 당시 사달을 일으켰던 문제가 그대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체리따봉’으로 상징되는 ‘윤심’(윤 대통령의 마음) 말이다. 

그래서 다음 사자성어는 ‘관저정치’다. 지난달 말 윤 대통령은 윤핵관 4인방 부부만 한남동 관저로 불러 만찬을 했다.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 회동 이틀 전이다. 이를 두고 측근들을 통해 당무에 개입하려는 것이냐, 친윤 세력화를 노리고 의원들 줄세우기를 하냐 등 여러 뒷말이 나왔다. 여당 의원들은 한술 더 떴다. 나도 관저에 초대받았느니, 윤 대통령과 전화로 소통하느니 ‘윤심’ 경쟁을 벌였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에선 말문이 막힌다.  

‘윤심’의 그림자는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당원투표 70%, 여론조사 30%로 돼 있는 전대 룰도 ‘윤심’에 밀려 당원투표 100% 변경으로 가는 모양새다. ‘수도권·MZ세대 대표론’이 나오고 윤 대통령 오른팔이라는 한동훈 법무장관의 당대표 차출설까지 나돌았다. MZ세대의 지지를 받은 이 전 대표를 쫓아내고 이런 얘길 잘도 한다 싶다. 지난 7일엔 친윤계 의원 모임인 ‘국민공감’이 출범했다. ‘국민공감’이라 쓰고 ‘윤심공감’이라 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이 지났다. 그사이 집권여당이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야당에 국회 다수당을 내준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대통령실과 야당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듣지 못했다. 되레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향해 막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모습 앞에선 집권여당의 책임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윤핵관, 신핵관, 진핵관, 윤심 감별사 등 신조어가 횡행하는 지금 여권의 모습에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2016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에선 ‘박(박근혜)심’을 앞세운 ‘진박(진실한 친박) 감별’ 열차가 달리고 달렸다. 박심만을 좇은 진박 열차는 20대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질주를 멈추지 않았고,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당시 교훈은 분명했다. 민심을 제대로 봐야 한다. 여당이 할 일은 윤심을 좇아 윤석열차에 올라타는 게 아니다.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체리따봉에게 내줘서야 되겠는가.

<김진우 정치부장 jwkim@kyunghyang.com>

 

 

연재 | 아침을 열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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