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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가 나던 해 세밑/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4·19 혁명은 5·16 군사쿠데타로 완성되지 못했고, 이 땅의 민주주의는 긴 잠을 자야 했다. 그러나 1987년 정점을 이룬 민주화 운동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고,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첫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냈다. 그 결실들은 정권교체의 뿌리가 됐다. 1980년대 대학생에게는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이들이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경제는 호황이었고,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는 낙관적 경기 전망이 대세였다.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당시 30대를 사람들을 ‘386세대’라 불렀다. 지금은 50대가 됐고, 간단히 86세대라고 한다.

-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들은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힘입어 사회 주도세력이 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도덕성을 강조한 86세대의 대표 아이콘이었다. 진보적 이념을 가진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지칭하는 ‘강남좌파’이면서 촌철살인의 비평과 현실참여로 젊은이들의 멘토가 되기도 했다. 그가 했던 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속히 퍼져 나갔다.

그는 “20대 청년 조국은 부족하고 미흡했다”며 “그러나 뜨거운 심장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아픔과 같이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법과 제도 개혁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도 했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소명을 다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양극화로 인한 빈부격차는 점점 커졌다. 괜찮은 일자리는 줄어들어 취업은 힘들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비정규직에게 맡겨졌고 그들의 월급은 정규직에 훨씬 못 미친다. 계층 이동 사다리였던 교육은 이제 계급을 공고히 해주는 성벽이 됐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되면서 부동산과 교육에 탐닉했다. 정의와 평등, 공정을 얘기하던 그들은 대화에서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기득권이 된 그들은 돈과 인맥과 정보로 그들만의 ‘스카이 캐슬’을 만들었다. 2주 인턴 후 제1저자가 된 단국대 논문의 지도교수는 “유학에 도움을 주려 했다”고 밝혔다. 저조한 성적에도 6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은 이유는 “면학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기득권을 통한 기회의 대물림이다.

-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민주화 상징 세대는 이제 아재를 넘어 꼰대가 되었다. 편하게들 의견 좀 내보지라고 말문을 열곤 제멋대로 결론을 내버리는 사장, 무슨 일이든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부터 하는 부서장, 능력은 떨어지면서 평가받을 땐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노래하는 직장 선배가 바로 예전의 그들이다. ‘민주적’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우고 싶어 하지만 실상은 교조적인 풍모를 감추지 못한다(김정훈·심나리·김향기 <386세대 유감>).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86세대에게 현재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불평등의 세대> 저자인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책에서 질 좋은 상층 노동시장 점유율, 최장의 근속연수,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는 386세대가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구조의 실천이라는 사회적 기대를 저버렸다고, 그래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지난 주말 청년들은 분노로 촛불을 들었다.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선’ 광경을 목도하면 ‘고개를 떨구는’ 게 당연하다. 조 후보자를 포장했던 ‘공정과 정의’가 되레 의혹의 출발점이었지만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조국만 문제냐’ ‘불법은 아니다’ ‘절차상 문제없다’는 물론 심지어 ‘보편적 기회’를 잡지 못한 흙수저들을 책망하는 언동조차 서슴지 않았다. 제발 부끄러움만이라도 느껴야 한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의 궤도를 한참 벗어나고 있다. 능력은 있는가. 지난 2분기 소득 상위·하위 20% 간 가처분소득 격차는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 노동자는 여전히 일하다 죽고, 청년은 일자리가 없다. 부동산값은 대형 규제책에도 숨만 죽이고 언제 다시 천정부지로 뛸지 가늠할 수 없다. 촛불의 염원은 점점 늪으로 빠지고 있다. 

(※조국 논란을 보며 김광규 시인이 1979년 발표한 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칼럼의 내용은 시인의 생각과 무관하다.)

<박재현 사회에디터 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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