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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은 지난달 29일자에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칼럼을 게재했다. 임 교수는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으로 “4·15 총선에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이 칼럼이 사전선거운동이라며 임 교수와 경향신문을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비난여론이 이어지자 고발을 취하했지만 임 교수의 과거 이력을 문제 삼아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앞서 언론중재위 산하 선거기사심의위원회는 해당 칼럼을 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선거법은 선거운동기간 외에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임 교수의 칼럼은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반대자들이 무차별적으로 신상을 캐고 중앙선관위에 고발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맞으며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기본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표현의 자유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언론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공동체 구성원이 가지는 근원적 권리다. 이를 토대로 개인은 개성을 발휘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더 나아가 민주사회로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헌법학자 허영은 ‘도덕적으로 필요한 생명의 공기를 공급해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전제군주에 의한 속박이라는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종지부를 찍은 프랑스대혁명이 인권선언에서 표현의 자유를 천명한 것은 그것이 ‘숨쉬는 공기’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1791년 미국 헌법이 언론·출판의 자유를 명문화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헌법상 시민의 권리로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폭넓게 인정되며 제한은 개인의 인격권과 충돌하는 경우 등 일부에 국한된다.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공공적·사회적·객관적인 의미를 가진 정보라면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칼럼과 관련해 언론중재위 산하 선거기사심의위 결정을 근거로 표현의 자유와 선거법 위반은 별개라고 주장한다. “선거법위반과 표현의 자유를 구별하지 못하는 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은 사치”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이다.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가 하위법인 선거법에 우선한다는 것은 기본상식이다. 경향신문은 필자의 원고를 원문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목도 마찬가지다. 이는 글을 쓰는 이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다.

한국사회에서 언론의 자유의 확대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대한민국 출범 이후 권위주의시대와 민주주의시대가 엇갈리면서 언론의 자유도 위축되거나 확장됐다. 무리하게 언론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역사는 보여준다. 60년 전 이승만 정권이 경향신문 폐간을 결정한 바 있다. 1959년 2월4일 실린 소칼럼 여적(餘滴)의 내용이 단초였다. 여적은 다수결의 원칙과 공명 선거에 대한 단상을 적었다. 한국의 현실에서 강압 없이 다수의 의사를 공정히 반영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선거가 이런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폭력 혁명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쓴 것이다. 이 칼럼으로 필자인 주요한과 사장 한창우가 기소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이 칼럼을 비롯한 일련의 기사에 대해 허위보도, 폭력선동 등을 폐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는 허울일 뿐 경향신문이 노골적인 대정부 비판기사를 게재해온 데 따른 것이었다.

1960년 4월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다. 폐간결정 1년여 만인 4월26일 대법원이 ‘발행허가정지의 행정처분집행 정지’ 결정을 내리면서 경향신문은 복간됐다. 이 사건은 제1공화국 최대의 언론 탄압 사건이다.

언론 자유의 길은 평탄하지 않다. 4·19혁명 헌법에서 넓어진 언론 출판의 자유는 1972년 유신헌법, 1980년 5공화국에서는 언론기본법으로 위축됐다. 1987년 언론기본법이 폐지됐지만 언론의 자유가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정권들마다 언론장악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가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60년 전처럼 지금도 선거 관련 보도가 문제가 됐다.

사회가 진보한다는 믿음이 정당하다면, 민주주의가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가 맞다면 언론 자유의 확대는 우리가 가야 할 미래다. 그리고 그 미래를 만들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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