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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다시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학교는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졸업식을 제대로 못한 학교들도 많고 대학들은 입학식과 개강을 연기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낮과 밤이 반복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처럼 우리의 삶도 새로운 시작과 마침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일종의 질서를 부여했음을 깨닫는다.

어느 때부터인가 자연의 질서도 예측불허이고 우리의 삶의 조건들도 예측하기 어려워져간다. 남부지방은 겨울 내내 눈이 한 번도 내리지 않더니 3월을 앞두고 눈이 내린다. 동백과 매화는 이미 피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봄에 황사는 얼마나 심할지 걱정이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문제투성이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제기하는 사람은 많으나 해결을 위해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작년 도덕과 환경 문제에 관한 단원 수업을 하며 내적 갈등이 심했다. 지행합일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직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해볼 수 있는 실천 영역으로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이면지 사용,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을 내놓는데 나는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함을 알지만 작은 불편들을 감수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죄책감을 느끼며 내 양심이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하거나, ‘남들도 다 그러는데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거나 강력한 정책을 내놓지 않는 정부를 탓하며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었다. 

이제 맑은 물을 마시기 위해 생수를 사거나 정수기를 들여야 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돈을 내고 공기청정기를 들여야 한다. 그리고 푸른 하늘을 보기 위해 먼 나라로 여행이라도 가야 하게 생겼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던 것들, 푸른 하늘,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등을 얻기 위해 우리는 갈수록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많은 걸 희생하면서 결국 그 돈으로 사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들이다.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새 학기를 앞두고 연간 수업을 계획하면서 가르칠 교과에 대해 고민하며 배움이 생생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책 속에만 머물고 있는 지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배움이 삶 속에 살아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우리가 배운 대로 실천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지게 될까? 모두가 배운 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라 말하지만 그러한 불일치가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고 우리를 혼란 속에 빠트리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간디가 자서전의 제목을 <나의 진리 실험>이라고 했듯이 진리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만 고통의 원인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행동을 계속한다는 것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기에 올해는 ‘작은 진리 실험’을 시작해봐야겠다.

<손연일 월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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