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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국회의장이 접견실로 들어서고 있다. l 출처 경향DB
박희태 국회의장이 한나라당의 ‘돈봉투 전대’ 의혹 한가운데에 섰다. 문제를 제기한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이 그제 검찰에 출두해 박 의장을 돈봉투를 돌린 당사자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박 의장은 펄쩍 뛰었으나 야당은 물론이고 친정 격인 한나라당조차 사실상 박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돈봉투 전대’ 사건이 결국 입법부 권위의 상징인 국회의장 연루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참담한 노릇이다.
고 의원의 검찰 진술은 실제상황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처럼 구체적이다. 고 의원은 2008년 7월 전당대회 2~3일 전 의원실로 현금 300만원이 든 돈봉투가 전달됐으며 봉투 안에는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이 들어있었다고 진술했다. ‘봉투 안에는 흰 편지봉투 3개에 각각 현금 100만원이 들어있었다’거나 ‘(되돌려준 상대는) 박 의장이 국회의원이던 17대 국회 때의 비서’, ‘돈봉투를 돌려준 날 오후 박 대표 측 인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는 진술도 했다. 그는 어제 기자들과 만나서도 검찰에서의 진술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내가 보고받은 바로는 (문제의) 쇼핑백에는 노란색 봉투가 잔뜩 들어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정도라면 누구라도 꾸며낸 얘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고 의원이 없는 사실을 날조해 입법부 수장인 박 의장에 대한 명예훼손은 물론 자신의 정치적 생명까지 걸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 의원의 폭로에 대해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박 의장의 태도다. 그는 의혹이 자신에게 쏠리는 와중에 10박11일의 해외순방길에 올랐다. 첫 방문지인 일본에서 고 의원의 검찰 진술을 전해들은 후 말로는 수사에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했지만 순방을 멈출 계획이 없다고 밝히는 등 실제 행동은 협조하려는 자세와 거리가 멀다. 시간이 흘러 구체적인 물증보다 당사자들의 증언에 의존해야 하는 이번 사건의 특성을 고려해 검사 출신인 박 의장이 의장직을 방패막이로 삼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하루속히 파장을 털어내야 하는 박근혜 위원장 체제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책임 있는 사람은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달라’며 박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박 의장은 지금이라도 의장직을 사퇴하고 당당하게 검찰 조사를 받는 게 옳다. 결백하다면 더더욱 최대한 협조적 자세로 검찰의 진상규명을 돕는 게 도리다. 그가 입법부 수장이라는 자리를 지키는 상황에서 검찰이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있으리라 믿는 국민은 드물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연루자들에 대한 법적 단죄 못지않게 정당정치의 대수술이라는 보다 큰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한 치 의혹없는 진상규명이 그 출발점이다. 박 의장이 버티면 버틸수록 자신의 명예는 물론이고, 국회의장이라는 자리만 더럽힐 뿐이라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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