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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아이폰과 클래식
김민아 | 논설위원
“생방송에 출연했는데,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리지 뭐예요…. 누구 건가 싶어 둘러보니 내 전화더라고요. 전화를 끄거나 진동으로 전환하는 법을 못 익힌 상태여서 당황했지요. 어쩔 수 없이 두르고 있던 스카프로 감싸서 위기를 넘겼어요.”
경향신문DB
스마트폰이 국내에 출시된 지 얼마 안됐을 때, 한 여성 명사가 들려준 얘기다. 운 좋은 이 한국 여성과 달리 지지리도 운 없는 미국 남성이 있다. 며칠 전 뉴욕 링컨센터의 에이버리피셔홀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이다. 뉴욕 필하모닉이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9번 마지막 부분을 연주할 즈음 그의 아이폰이 울렸다. 지휘자가 객석을 노려봤지만 벨소리는 계속됐다. 결국 지휘자는 연주를 멈췄다. 뒤늦게 휴대전화 주인이 벨을 끄면서 공연은 재개됐다.
뉴욕필이 ‘후원자 X’라고만 밝힌 이 남성은 20년간 이 오케스트라를 후원해온 60대 클래식 애호가라고 한다. 공연에 앞서 휴대전화를 꺼야 한다는 에티켓을 모를 리 없는데, 망신살이 뻗친 사연은 무엇일까. 뉴욕타임스 인터뷰에 따르면, 연주회 전날 이 남성의 회사가 휴대전화를 블랙베리에서 아이폰으로 바꿔준 게 사단이었다.
공연 전 그는 아이폰을 ‘매너 모드’로 변경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알람이 설정됐다는 것과 전화기가 매너 모드일 때도 알람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건 몰랐다. 이 남성은 지휘자가 쳐다보는데도 자신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확인’ 차원에서 휴대전화 단추를 눌러봤다. 그러자 벨소리가 멈췄다. 알람이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은 귀갓길 차 안에서 부인이 발견했다.
경향신문 DB
소란 때문에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는 종종 있어왔다. 거장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항공기 소음이 심하다는 이유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5차례나 중단시킨 적이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은 객석에서 기침 소리가 나자 “좋습니다. 모두 기침하세요”라며 잠시 무대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클래식 애호가가 최신 휴대전화 작동법을 몰라서 연주 중단 사태를 빚었다는 뉴스는 조금 서글프다. 1909년 말러가 작곡한 교향곡 9번이 ‘20세기의 클래식’이라면 2007년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아이폰은 100년쯤 뒤 ‘21세기의 클래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때쯤엔 또 어떤 ‘신상(품)’이 ‘후원자 X’를 난감하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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