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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트위터에 ‘밥하다 죽은 엄마’(@iamyourdeadmom)라는 계정이 등장했다. ‘평생 남편, 자식새끼 밥하다 죽은 엄마의 영혼’이라는 프로필에 현재 장소는 ‘납골당’이다. 가상의 화자는 가족에게 자신의 삶을 바쳐야 했던 한국의 여성에 대해 말한다. “엄마도 꿈이 있었어.” “엄마의 엄마도 우리들, 아버지 챙기느라 자기는 하나도 못 보살피다가 돌아가셨어. 그런데 나도 그렇게 됐네. 우리 딸은 그러지 마.”

‘엄마 밥’이 상징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사회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당연한 의무로 경시되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이다. 젖 달라고 아이가 보채듯 성인이 돼서도 ‘엄마’에게 ‘밥’ 달라고 보채기만 하는 게 과연 온당한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남자들이 가사노동을 하지 않기로 악명 높다. 맞벌이라고 해도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14분으로 남성(40분)보다 5배 정도 길다. 계정에 동조하듯 ‘집안일 하다가 죽은 딸’(@dead_daughter)도 하소연했다. “집안일 하나씩 하면서 시집가도 되겠네 하는 소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어요. 근데 왜 오빠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지저분하게 지내면 빨리 장가가라고 해요?” 가사노동의 불공평함을 모성이나 사랑으로 포장하는 것을 참지 않겠다는 여성의 목소리다.

그러다 지난 12일 ‘일하다 죽은 아빠’(@iamyourdeadpapa) 계정이 등장했다. ‘평생 마누라, 자식새끼 먹여살리느라 일만 하다 죽은 아빠의 영혼’이라는 프로필에 현재 장소는 ‘공동묘지’다. 격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가부장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째선지 이 계정은 대뜸 시작하자마자 ‘밥하다 죽은 엄마’를 타박했다. “밥하기 싫으면 나가서 돈을 벌어라. 돈 벌기도 싫다? 집에서 가정을 위한 일이 가사다.” “명절 3일 전 부치는 걸로 징징대는데 취사병 2년 해봐야 정신 차리지?”

사용자들은 “아빠가 죽을 지경으로 일하는 건 노사 문제잖냐”며 문제를 단순히 ‘남녀’ 구도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2014년 산재 사망 노동자가 1850명으로, 인구 10만명당 산재 사망률이 21명에 이른다. 영국(0.7명)의 30배다.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인데도 개인의 불운으로만 여긴다. 급기야 이 가부장적인 계정을 ‘저격’하듯 등판한 ‘일 시킨 사장’(@iamyourbosssss)은 숨겨진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이렇게 꼬집었다. “난 이런 애들이 참 좋다. 노조 같은 거 안 하고 시키는 걸 다 하면서 불평은 지 마누라한테 가서 하기 때문이다.”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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