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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만에 등장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지난주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11시간39분 발언’ ‘세계 최장 기록 돌파’와 같은 신기록을 세웠기 때문만이 아니다. 반응은 온라인에서 더 뜨거웠다. TV와 주요 신문에서 필리버스터 소식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지만 인터넷에서는 국회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이슈가 됐다. 유튜브와 SNS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첫 타자로 나서자마자 SNS에서 화제가 됐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로 ‘김광진 힘내라’가 올랐다.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는 국회방송을 보고, SNS로 필리버스터 상황을 공유했다. 의원들은 간만에 ‘국민의 입’ 구실을 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누리꾼들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의견을 받아 이를 낭독하고, 온라인 사이트 ‘filibuster.me’에 올라온 누리꾼들의 의견을 본회의장에 전달했다. 위키피디아와 ‘filibuster.today’에는 필리버스터의 진행 상황과 주요 발언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됐다. ‘집단 지성’의 힘마저 느끼게 했다. 국회방송은 순식간에 ‘꿀잼’을 주는 인기채널이 됐다.

의원들은 텅 빈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했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광장보다 넓은 곳에서 국민들을 향해 말한 셈이 됐다. 필리버스터를 보기 위해 국회 방청석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나한테 말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오은 시인은 “필리버스터를 영국 의회에서는 프리부스터(freebooster)라 부른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해방감(free)을 가져다주는 촉진제(booster)임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필리버스터는 SNS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좋은 경험이 됐다. 이 경험이 그저 일시적 시원함을 주는 ‘사이다’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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