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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는 임진강, 남에는 백진강이 있었다. 영산강을 옛 담양 사람들은 ‘백진강’이라 불렀단다. 달밤에 보면 하얀 용이 흘러가는 형상이라 하여 백진강. 지금은 조그만 천변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제법 강폭이 넓고 큰 바위들이 부려 있으니 겉으로 보아서도 웅장한 강줄기였을 것이다. 강은 자주 범람했고 홍수피해가 막대했다. 원님은 팽나무, 음나무, 은단풍나무, 푸조나무 등을 강둑길에 가득 심게 했다. 이걸 관에서 주도했다하여 ‘관방제림’이라 하였다. 관이 마땅히 해야 할 일, 나라가 할 일을 제대로 할 때 두고두고 그 공적은 빛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둑길을 따라 올라가면 용이 승천했다는 ‘가마골’이 나온다. 용소 주변 바위들이 쩍쩍 갈라져 있는데 용이 승천하면서 낸 자국들이란다. 영산강은 이곳이 시원지이고 굽이굽이 흘러가서 남해바다에 이르게 된다. 4대강 개발로 숨이 탁 막혔던 영산강. 다만 흉내, 시늉이라도 원상회복의 길을 텄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백진강에는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고 오랜 날을 이무기로 살았던 구렁이 복녀 전설이 남아 있다. 백진강 북천에 살던 구렁이 두 마리는 부부였는데 남편은 용이 되어 승천하고 뒤따르던 아내는 부정을 타서 그만 이무기가 되고 말았다. 다시 용이 되려면 인간으로 둔갑해 사내와 정을 나누어야 했다. 이무기는 봉물장수로 변장하여 동정자마을 효자 바우에게 찾아갔다. 자신이 남장을 한 복녀라고 밝히고, 둘은 신방을 차렸다. 바우와 복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겨울과 봄을 같이 살았다. 바우가 물난리 걱정을 하자 복녀는 금은보화를 쥐여주며 나중에 원님에게 바쳐 북천에 큰 둑을 세우고 나무도 많이 심으라 하였다. 이무기는 착한 바우의 혼을 결국 훔치지 못하고 차가운 강물로 돌아갔다. 바우는 복녀가 보고 싶어 같이 덮던 하얀 이불을 들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소설가 설재록은 <백진강 전설>에서 감동적인 마무리를 들려준다. “바우는 잡고 있던 이불을 물줄기 위에 펼쳐 놓았다. 이불이 너울거리며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불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며 꿈틀거렸다. 바우의 눈에는 그 이불이 하얀 용처럼 보였다. 비로소 바우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임의진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