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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일째이던 7월24일 밤, 전날 안산을 출발해 걸어서 국회의사당을 거쳐 서울시청에 다다른 세월호 유가족들이 시민들과 함께 추모행사를 마치고 광화문 단식농성장으로 향했다. 수많은 시민이 그 뒤를 따랐다. 시청앞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찻길에 빼곡히 들어찬 시민들을 막아선 경찰은 도로교통법인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인지를 위반하고 있다면서 해산을 명했다. 세차게 퍼붓는 작달비와 경찰의 시간 끌기로 결국 행렬은 흩어졌다. 유가족의 뜻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던 약속을 지켜달라며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가고자하던 시민들 역시 도로교통법 위반을 목청 높여 외치는 경찰의 봉쇄 앞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 하나의 가설적 질문을 던져보자.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정법을 위반해가면서 법의 이름을 외치는 게 과연 정의로운 일일까? 또 하나,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고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마당에 특별법을 만든다면 그것은 법의 이름으로 법치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까? 흔히 나올 법한 비판이다.

시민들이 도로교통법을 어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로교통법이든 유가족이 요구하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든 오늘날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은 법의 틀 안과 법의 틀 밖으로 나뉘고 그에 따른 공감 또는 비난과 마주친다. 우리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이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손해를 보거나 고통을 당할 사람은 대개 힘없는 시민들일 것이므로 아무리 악법 같아 보여도 법이 없는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다. 법치는 법을 이용한 지배가 아니라 통치자의 성향이 어떻든 변치 않는 ‘법의 지배’를 뜻한다. 그러므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하였다면 그가 누구이든 사연이 어떻든 법을 집행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경찰은 그런 행동을 막아야 한다. 위반 행위가 지나치다면 처벌을 피할 수도 없다.

법정에 올려진 세월호 침몰사건 서류 (출처 : 경향DB)

그런데 구부러지지 않는 대나무자 대신 줄자를 이용하여 세상을 재어볼 수도 있다. 법은 사람보다 앞서 갈 수 있는가? 사회의 변화나 발전보다 더 민감하게 빨리 갈 수 있는가? 법조계 사람들은 대개 법이 사회의 상식 또는 통념을 뛰어넘기 어렵다고 답한다. 사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사회가 어떤 미래를 향해 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든 사회 전반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법의 잣대를 댈 수는 없다.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넣어야 한다는 최근 대법원의 판결만 봐도 그렇다. 법은 사회의 변화, 상식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그 수준에서 매우 뒤늦게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상식 수준을 훌쩍 뛰어넘거나 그 수준에 몹시 뒤떨어지는 때에 그 법은 악법으로 지목받는다.

법의 성격이 원래 이러하므로 법적 정의 아래서 많은 희생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4·19혁명과 5·18광주항쟁, 6·10민주항쟁 등 몇 차례의 시민행동을 거쳐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세웠다. 그 같은 행동이 역사적 정당성을 얻기 전까지 그 시민행동에 참여했던 모든 이는 폭도였고 범법자였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세 달이 넘게 세월호 유가족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차분하고 끈기있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사태의 해결을 추구했다. 참사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리던 시민들 역시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고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좇아야 하는지 성찰을 거듭했다. 원치 않던 재난을 겪으며 그간 억눌려 있던 ‘사람의 도리’에 새로이 눈뜨는 각성의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현명함 덕이다. 법 이전에 사람의 도리가 무너지는 세태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 덕이다. 1987년 6월항쟁 이전의 개헌 요구 서명에 참여한 국민은 100만명도 되지 않는다. 400만명에 이르는 국민의 특별법 제정 요구는 우리 사회가 지금 법 이전의 문제를, 사람의 도리를 다루고 있음을 뜻한다. 정부와 국회는 이 점을 정확하게 봐야 한다.


이건범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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